유물 및 유적답사

초안산 조선시대 분묘군(내시묘)

윤여설 2007. 11. 8. 20:07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해 볼 수가 있음)                                                                               

 

     서울 노원구 월계동의 초안산은  거대한 분묘군이다. 산 전체가 조선시대의 사대부 및 민묘로 가득하다. 특히 조선시대의 내시들의 묘가 산재해 있다. 풍수적으로도 인근의 수락산과 북한산과는 달리 암반이 적고 동서로 중랑천과 우천을 끼고 있어서 고려시대부터 명당으로 꼽아왔다고 한다. 또한 초안산에서 바라본 주위의 경관은 수려하다. 북쪽으론 북한산과 도봉산이 평풍처럼 둘러쳐 있고 동쪽으론 수락산과 불암산이 둘러쳐 있다. 이제 거의 봉분은 가라 앉아 평토가 되어가고, 문인석은 뽑혀서 나뒹굴거나 좀 문화적 가치가 있는 것은 모두가 도굴되어 흔적만  남았다. 서울 시내에서 조선시대의 집단분묘군은 이 곳이 마지막 남은 곳이다. 얼마전까지 은평구에 분묘군이 있었으나 지금  은평뉴타운 지역으로 편입되어 발굴이 진행중이다.

 

 

 사대부의 묘로 추정되는 상석 앞에 매우 특히한 문인석이 서 있다. 원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1970년대 초에 문화적 가치가 있는 석물들은 모두가 도굴되었다고 한다. 또한 연고가 있는 묘들은 그 시절에 이장되었다. 사진의 저 무덤은 상석에 비문이 없는 것으로 보아 가묘로 추정된다. 당시 여유가 있는 사대부들은 무덤의 위치가 좋으면 생전에 유택을 미리 마련해 놓는 경우가 많았다. 그 풍습은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지금 이곳에 남아 있는 무덤들은 거의가 무연고 무덤들이다. 더욱이 내시들의 묘가 많다. 내시들은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것처럼 궁궐에서 생활한 것이 아니라, 가정을 이루고 출퇴근하면서 살았다. 그리고 품계에 따라서 국가에서 내리는 토지를 하사받아서 상당한 재력이 있었다. 청상의 과부나 흠이 있는 여인내를 아내로 얻되 부지런히 재산을 모았다. 그리고 비뇨기과 의사들의 말에 의하면 고환만 상실될 경우엔, 생식능력만 상실이 되었을 뿐, 성기능엔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한다. 또한 자신처럼 생식능력이 없는 아이들을 골라서 후손으로 삼아 대를 이어갔다. 그 후손이 몇 년전에 TV에 소개된 경우가 있었다.

 

 

  내시가 되는 과정은 보통 세가지로 나눠진다. 선천적인 성적능력 상실의 경우와 사고로 인한 성기능 상실의 경우가 있고, 또한 생활고에 시달린 나머지 부모가 일부러 자식의 성기능을 상실시켜 궁궐로 보내는 경우이다. 어떤 경우라도 그들의 삶은 정상인에 비해 불우했을 것이다. 더욱이 생물학적으론 인간은 동물이다. 동물의 생존목적은 종족보존에 있다. 사고력과 지능이 높은 인간이 자신의 후손을 갖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살아가는 삶은 어떠했을까?

 

 지금 저 사진은 아직 낙엽이 완전히 지지 않아서 지표의 윤곽이 뚜렸하지 않으나, 봉긋한 부분이 모두 무덤들이다. 이제 아카사이아 잡목들 사이에서 거의 그 자취를 감추고 있다. 다행인 것은 서울시에서 지금 학술적 지표조사를 실시 중에 있다. 보존가치가 매우 큰 무덤군이다. 늦게나마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초안산 무덤군의 특징은 꼭 조선시대의 분묘전시장 같다. 사대부의 묘부터 내시 및 서민들의 묘까지 두루 섞여 있다. 특히 안내문에도 적혀 있듯이 내씨들의 묘는 모두가 궁궐쪽을 향하고 있다. 죽어서도 왕의 안녕을 위해서라니, 죽음 마저도 주군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