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악에 올라 남산을 보다
날은 약간 흐렸다.
경복궁 전철역을 지난 버스가 경복고등학교 후문으로 해서 자하문 고개에 도착했을 때 차에서 내린 우리 일행을 반겨준 것은 산 아래 축대에 흔한 그만그만한 노오란 개나리였다. 오래 전 토요일 오후에, 고개를 넘어 세검정을 지나 상명여대(그때는 여학교였다) 앞을 지났을 때가 불현듯 생각난 것은 순전히 그 개나리 빛 때문이다.
갓 만들어진 목재데크의 창의문 쉼터에 모인 일행은 안내원과 계단중간에 있는 군인이 뭔가를 이야기하고 있을 동안 설명책자를 보면서 잠시 기다렸다. 덕분에 북악산이 흰 바위라는 뜻의 ‘백악’으로 불렸던 것이며, 호랑이 나온다던 인왕산과 남산과 낙산을 빙 둘러 성을 쌓고 한양 도성을 만든 이야기, 보존이 잘 되어 있는 창의문 이야기를 미리 알 수 있었다.
잠시 후 우리 일행은 쳐다보지도 못할 만큼 높고 높아 그동안 오르지 못했던 북악을 성곽 옆 계단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오르기 시작했다. 중간마다 보이는 군인들과 경계초소, 감시카메라의 모습에 조금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가파른 계단 중간자락에 ‘어이구 힘들어’ 할만한 적당한 위치에 나타난 쾌적한 돌고래 쉼터, 북악산 군인들 근무하며 ‘소대장님이 산꼭대기까지 돌고오래~’ 해서 돌고래쉼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전망도 좋고 위치도 적당하여 다리 풀면서 숨고르기 좋은 곳이었다(같이 갔던 분 말씀으로는 돌고래 모양의 돌이 있었단다. 그럼 그렇지. 산중에 돌고래라니..)
지형 따라 바위 따라 펼쳐진 꼬불꼬불한 하얀 산성이 보기 좋았고, 땀을 닦으며 잠깐씩 뒤돌아보는 인왕산 모습도 아름다웠다. 성곽은 우리가 지나는 안쪽 편이 높고 성곽 바깥은 아주 낮아 그 곳에서 공격하는 군사가 있다면 그 군사는 나를 올려다보기 매우 불편하고 나는 그 쪽을 편리하게 보며 활과 총 같은 것으로 방어하기 매우 유리하게 생겼다. 멀리 보는 곳과 가까이 보는 구멍이 있으며 성벽에 오르는 적병을 공격할 수 있는 시설까지 갖춰져 있는데 재미있는 것은 성벽의 위치에 맞추어 바깥을 감시하기 좋은 위치에 지금 있는 경계초소들도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곳은 계단이 가파르기 때문에 나이 드신 분이나 어린 분과 함께 온다면 노선을 반대로 잡아 와룡공원에서 이곳 창의문쉼터로 오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올라 청운대에 다다르니 소나무 사이로 한양 땅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데, 높기만 하던 중심가 빌딩들이 바닥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모습이며, 아래에서 수직으로 올려다보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짜릿한 한양명물 남산타워가 그리 낮아 보이는 모습에 일면 가소롭기도 하고, 구중궁궐 경복궁이 산 아래 펼쳐진 모습에 시 한수 지어 읊조리고는 싶은 마음은 가득했으나 이내 문자속 없음을 한하며 아쉬운 내리막 발걸음을 재촉해야만 했다.
지난 사십년간 가까우면서도 오를 엄두를 내지 못한 산 능선을 걸으며, 군부대 막사를 돌아 성곽을 넘나들며 앞사람 놓칠세라 서둘러 지나온 삼중철조망 길, 팔각정이 보이는 곳에 있던 대공화기 거치대에, 다시금 ‘접근금지! 촉수엄금!’이 떠올랐지만, 간간이 보이는 군인들의 아직은 어눌한 환영 인사말과 ‘가짜중나무라는 뜻에서 가죽나무라고 부르던 나무랍니다. 그래서 스님들이 잎을 먹는 진짜 참중나무는 따로 있지요‘식의 대화체 나무안내문에, 태조-세종-숙종대 만들어진 성곽모습을 한 눈에 보며 각기 다른 특징을 잘 묘사한 성곽안내문, 돌계단이 높으면 두 세 칸으로 나누어 설치되어 있는 목재 데크 계단에 이 길을 연 사람들의 세심함이 보이는 것 같다.
오를 때와 달리 서늘해지는 북쪽사면을 내려오니 주위를 물리고 마주서서 어려운 현안문제를 - 하산 길 막걸리 값을 누가 부담할 것인가 등의 - 터놓고 이야기할 만한 숙정문 문루와, 그곳에서 눈을 들어올리니 홍련사 절집 기와가 보이는 것이 혹시 저 기와지붕 선을 보고 있으면 답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숙정문은 그 옛날 문을 굳게 닫아두었다가 기우제 같은 특별한 행사에나 열었다니 뭔가 풀리지 않는 것이 있는 사람들은 한번씩 오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래도 안 풀리면 어쩔 수 없는 것이고 혹 해결된다면 역시 우리 조상의 지혜다.
두 시간여 천천히 걸어서 둘러 본 북악산과 서울성곽 답사. 가벼운 산행도 되면서 6백년 역사를 함께한 탐구였다 생각해도 좋을 상쾌한 걸음이었는데, 다음에 다시 오게 된다면 청운대에서 만들지 못한 시를 다시 짓고 싶다. 그곳에서 산 아래를 굽어보던 옛사람의 도움으로 멋진 문장을 엮게 될 지도 모르므로. 그리고 그 산 아래 서울 속 두메산골인 뒷골과 백사실까지 가볼 수 있다면 지나친 욕심일까
조선을 건국한 태조가 ‘성이라는 것은 국가의 울타리요, 강폭한 것을 방어하고 민생을 보호하기 위하여 없을 수 없는 것이다’ 라고 했다는데 오늘 답사의 소감을 위해 잠시 빌려보며 앞뒤 없는 登北岳記를 줄인다.
‘문화유산 자연유산이라는 것은 우리의 울타리요, 근본을 지키고자 방어하고 민생을 보호하기 위하여 없을 수 없는 것이다.’
작성자 : 문화재청 천연기념물과 정대영 | |
약 력 : 현. 문화재청 천연기념물과 근무 중 | |
연락처 : 042-481-4988.. jdy71@ocp.go.kr |
<문화재청에서 옮겨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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