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안동에 있는 지례예술촌은 문화예술인들이 편안하게 쉬면서 작품활동을 할 수 있는 400년 된 고가(古家)다. 시인 김원길 촌장이 임하댐 건설로 수몰위기에 처한 종택을 인근으로 옮겨 89년 문을 열었다. 그동안 이 곳을 거쳐간 문화예술계 인사는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 지난해 '안동의 해학'이라는 책을 펴내기도 한 천상 '안동선비' 김원길 촌장은 "한국의 전통문화를 외국인들에게 알리는 역할도 하고 있어 보람이 크다"고 말한다.
경북 안동시 임동면 박곡리 뒷산자락에 올라앉은 지례예술촌은 전통과 예술이 만나는 공간이다. 대문 앞으로는 넓은 호수가 펼쳐져 있고 건물 뒤는 높다란 산이다. 낮에는 수백년 된 나무마루 가득 햇빛이 깃들고 달 밝은 밤에는 불을 켜지 않아도 구석구석이 훤하다. 한겨울 칼바람이 문풍지를 들이받다가 긴 울음소리를 내며 멀어져 가면, 자글자글 끓는 온돌방 안에서는 때묻지 않은 자연과 400년 고가(古家)의 정기에 취한 감상이 절로 고개를 내민다.
전통과 예술이 어우러진 문화공간 '지례예술촌' 건립 선비들의 유머와 기지 담은 '안동의 해학' 펴내기도
번잡한 일상을 피해 문화예술인들이 마음을 내려놓고 편안하게 작품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집을 개방해 지례예술촌을 만든 이는 김원길(62, 시인·안동예총 회장)촌장이다. 지례예술촌의 고가들은 1664년 조선 숙종때 지어진 의성김씨 지촌 김방걸 종택과 제청, 서당으로 모두 10여 동 125칸, 17개 방에 이른다. 지촌 선생의 13대 종손인 김원길 촌장은 임하댐의 건설로 종택이 수몰위기에 놓이자 1986년부터 89년까지 200여m 떨어진 이곳으로 건물들을 옮기고 '지례예술촌'의 문을 열었다. "예술촌을 빨리 하고 싶어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회상할 만큼, 당시 김 촌장은 열일 제쳐두고 예술촌 건립에 매달렸다.
"재미 소설가 김용익 선생이 83년 우연히 들렀다가 이렇게 태고연한 마을이 다 있느냐며 탄복을 했지요. '나중에 퇴직한 후 이곳에 와서 자서전을 쓰고싶다'면서 '아티스트 콜로니(예술인촌)로 꾸미는게 어떻겠냐고 하더군요. 미국에서는 예술까들이 일정 기간 살면서 창작에 전념할 수 있는 아티스트 콜로니가 15개 이상 있다'고 하면서요. 그 얘기가 굉장히 충격적으로 들렸지요."
그렇게 우연한 계기가 밑바탕이 되어 설립된 지례예술촌에는 그동안 이어령, 조병화, 홍신자, 유안진, 한수산, 김용옥 등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만은 학계, 예술계 인사들이 거쳐갔다. 처음에는 예술가들을 위한 창작의 산실로만 염두에 두었지만, 안동의 전통가옥과 양반문화의 정수를 경험하고 싶어하는 이들의 문의가 쇄도해 나중에는 예술촌의 취지를 깨지 않는 선에서 일반인들의 방문도 하용하기 시작했다.
"입소문이 나면서 외국인들이 많이 찾아옵니다. 다들 한국의 전통 온돌방을 신기해하지요. 방바닥에 손과 뺨을 대보고 따뜻하다고 좋아들 하고.... 방안 이곳저곳에 신발자국을 찍어 놓는 사람도 있어요.(웃음) 돌아간 뒤에 '한국의 전통문화와 전통가옥의 멋, 주변 경치 등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면서 감사의 메일이나 편지, 선물을 보내오는 외국인도 적지 않아 큰 보람을 느낍니다." 안동대 교수직을 그만두고 스스로 '촌장'이라는 감투를 택했지만 김원길 선생의 마음은 보람으로 가득하다. 그래서 산골짜기에 있는 지례예술촌을 찾는 이들을 시내에서 만나 태워오고 원하는 곳에 데려다 주는 '운전기사' 역할도 즐겁게 한다. 1990년부터 건물 복원 기술자들의 출퇴근을 책임지느라 기아 봉고를 사서 운전을 시작했고, 지금은 갤로퍼 밴으로 구불구불한 산길을 오간다.
"요즘에는 전국 대학 등에 고건축물 활용 관련 강연을 다니고 있어요. 20여 년간 머리 싸매고 뛰어다닌 노하우를 당연히 알리고 전파해야지요. 글이나 쓰면서 조용히 살려고 했는데, 다른 할 일이 너무 많네요.(웃음)"
그렇게 바쁜 중에도 그는 지난해 '안동의 해학'(현암사 간)이라는 책을 썼다. 안동지역 선비들의 농담과 재치 넘치는 일화들을 소개한 책으로,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근엄한 양반의 고장 안동에 대한 선입견이 여지없이 깨진다. '진짜' 안동선비 김원길 촌장도 일화의 한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