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아름다운 어둠(전편수록)

시집 <아름다운 어둠> 해설:서정의 아이러니

윤여설 2005. 12. 26. 11:30
 


抒情의 아이러니


                            김태진 (홍대교수, 문학평론가)





1. 들어가는말





시쓰는 방법은 관념(觀念)을 설정하고 연관성있는 사물(事物)을 끌어들이는 것과 사물을 쳐다보고 관념을 설정하여 주제화 시키는 것, 그리고 사물의 속성을 직관적으로 표현해 내는 것 등  이 있다 하겠으나, 이 모든 방법의 공통점은 언어와 사물이 불일치하고 있는 것을 인식하고서 그것을 극복해 보고자하는 노력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 노력의 중심부에 현대 시인의 자리가 놓여진다. 현대 시인들의 성향은 고전주의(古典主義)부터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까지 다양하고 또 그 구사하는 시적 기법, 또한 매우 세밀해서 작가의 정신세계를 파헤치는 중요한 근거가 되기도 한다.


시인이 보는 세계는 항상 범상치 않다. 가시(可視)의 세계를 지나 불가시(不可視)의 세계를 훑어보며 그 내부(內部)의 은밀한 움직임을 포착하는 감성(感性)의 곡예사(曲藝師)이다. 이 감성의 곡예사 중에 주목해 보아야할 윤여설 시인이 있다. 그는 사물과 관념을 섬세하게 다루어내는 감성을 우리에게 보여주는,이 시대의 중요한 서정시인이다. 


아래의 작품은 그가 ‘나사못’ 한개에 숨겨진 본능(本能), 즉 속성도 놓치지 않고 섬세하게 다루어 주는 것을 보여 준다.





드라이버 날이 휘어져도/ 한사코 남으려는 나사못이 있다/


결별을 싫어하는 본능                 -<인연>에서





빼야할 나사못은 분명 쓸모없는 존재이다. 그러나 그 나사못은 ‘드라이버 날이 휘어져도’ 빠지지 않는데, 이것을 시인은 ‘결별을 싫어하는 본능’으로 포착하고 있다.이는 시인이 주변 사물에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문학적 증거(文學的 證據)이다.


아무리 작고 하찮은 ‘나사못’일지라도 끈끈한 인연(因緣)에의 애착이 있다고 인식함으로써 시인은 ‘나사못’의 문학적 정체성(文學的 正體性)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묘사(描寫)는 시인의 섬세한 감수성(感受性)에 기인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 감수성의 내면에는 세상을 쳐다보는 독특한 방식이 숨어 있다. 바로 아이러니(Irony)이다. 이 아이러니는 시적 대상을  비틀어서 쳐다보는 기법(技法)이다. 문제는 그 비트는 정도인데, 살짝 비틀기도 하고 완전히 비틀어보기도하는 다양한 정도의 차이가 존재한다.





방 엿보는 하늘 가득/  넌지시 속삭이는 별들 중에/    애달음에 뼈 시린 하나가/


입 한 번 맞추려다/    황홀히 소멸하며/ 한을 내 뿜는다/       - <유성>에서





방이 하늘을 엿보는가, 아니면 하늘이 방을 엿보는가,라는 문제는 그 인식(認識)의 차이는 있겠지만, 분명 하늘이 방을 엿본다는 표현은 우리의 보편적 인식을 약간은 비틀어 놓은 것이다. 그러나 ‘황홀히 소멸하며’라는 구절에서는 우리는 자연현상에 대한 대조적 표현을 보게 된다. 밤하늘에 유성의 떨어짐을 ‘황홀히 소멸하며’라고 한 것은 단순한 표현인 듯 하면서도 시인의 독특한 인식의 드러냄이다. 단순하다는 것은 그저 표현을 ‘황홀하다’와 ‘소멸한다’의 두 개의 인식을 하나로 묶어 놓았다는 점에서 지적할 수 있는 것이고, 독특하다는 것은 하나의 유성을 보고  황홀감과 소멸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지적할 수 있는 것이다. 더구나 시인이 ‘한을 내뿜는다’라고  유성의 떨어지는 현상을 묘사하고 있는데, 이는 과거 우리 조상들의 전통적 인식(傳統的 認識)과 다르지 않기에,-별이 떨어지면 유명한 사람이 죽는다는 인식- 예사로와 보이질 않는다.





2. 아이러니(Irony)의 詩學





아이러니란 사물(事物)과 관념(觀念)에 대한 기호표현(記號表現)을 객관성(客觀性)에서 벗어나게 함으로써 빚어지는 긴장감을 유발시키는 문학적 기법이다. 이 기법이 보다 효과적이 되려면, 시인의 섬세한 감각이 동원되어야 한다.


윤여설 시인의 섬세(纖細)한 감각(感覺)은 가을 논둑길에서도 그 빛을 발하고 있다.





나락목 사이로/ 가을이 지나간다


----중략---


은혜를 아는 나락은/ 물꼬를 향해 고개를 숙인다    -  <가을 논둑길에서>에서





가을의 풍요를 간직한 논둑에서 살랑살랑 고개 흔드는 벼를 보면서 ‘가을이 지나간다’라고 묘사하는 것은 일반적인 자연현상을 놓치지 않는 시인의 감수성이다. 더구나 벼가 익어 고개 숙이는 현상을 ‘물꼬를 향해 은혜에 보답하는 몸짓’으로 표현하는 데에 이르러서는 시인의 인식적(認識的) 참신성(斬新性)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참신함은 일상적인 상황들을 주관적인 인식의 체계로 변화시킨다는 데에서도 드러난다.





숨어든 바이러스가 불을 지펴/ 엄동에도 내의가 흥건하다/  ---중략----/


봄을 맞기 위한 시련일게다           -<독감>에서





겨울에 걸린 독감은 누구나 역겨운 존재이다. 이러한 독감을 ‘봄을 맞기 위한 시련’으로 묘사하는 것은 시인만의 독특한 인식방법일 것이다. 일종의 살짝 비틀기 수법인 셈이다.


시인의 아이러니 기법은 시어의 모순적 배열에서도 보여진다.




둘러봐도 격한 듯 차분한/ 우리의 산


----중   략---


저 부드럽게 휘감아오는 초록이/ 고난의 시작인 것을....../


----중 략----


상큼한 햇살도 고통이다


-<봄의 능선>에서





봄의 따사로운 풍경(風景)을 묘사하는 이 시는 한 문장 내에서 ‘격한 듯 차분한’, ‘초록이 고난의 시작’, ‘햇살도 고통이다’, 등의 표현으로 미루어 보아 시인이 의식적으로 모순어법(矛盾語法)을 사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일종의 아이러니 기법 중 독자들에게 충격을 주는 방법인 셈이다.  이러한 기법은 여러 작품들 중에서도 보이는데, 예를 들면 제목 중에 ‘아름다운 어둠, 부패한 아름다움, 고독한 멋, 가난한 기쁨’등으로 설정해 놓은 것도 이에 해당한다.


이러한 모순적 시어의 배열은 시인의 독특한 세계인식을 보여주는 일단면으로  가끔씩 작품 들 속에 나타나는 의인법(擬人法)을 더욱 값어치 있게 해준다.








그냥은 지나갈 수 없어요//팔을 수평으로 뻗고 가로막는 건/ 달아오른 육신 때문입니다/


당신의 손이 내 몸에 다가올 때/갈증으로 충만한,/움직이지 않는 전율을 모르셨나요/


합궁을 기다리는 성애의 침묵을......//노란 티켓 한 장으로/스스로 몸을 푸는 지하철 게이트


-<개찰구> 전문





이 시는 시인의 의인법(擬人法)이 가장 세련되게 드러난 대표작 수준의 작품이다. 여성적 어조로 자신의 처지를 독백을 하는 듯한 지하철 게이트의 모습이 눈 앞에 선연하게 보이도록 묘사해 놓은 이 시는 현대문명의 산물인 지하철 게이트도 여성적 어조로 시적 대상화 시킬 수 있다는 데에서, 매우 이례적(異例的)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러한 나긋나긋한 여성적 어조의 뒤에는 ‘성애(性愛)', 즉 에로티시즘(eroticism)의 냄새가 나고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달아오른 육신, 합궁, 성애, 몸을 푸는‘ 등의 시어배열로 볼 때에, 에로티시즘의 냄새는 충분히 표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에로티시즘의 편린(片鱗)은 <解渴>에서도 드러난다.





여인이 기진맥진해 있다/ 마른 침도 삼키지 못한 정욕에/ 열기만 뿜는 비애/


까칠한 얼굴에 말라버린 가슴/ 은밀한 곳을 드러낸다/모자이크를 한 방죽바닥


<해갈>에서





가뭄에 타들어간 ‘방죽바닥’을 정욕(情慾)에 달아오른 여인의 육체로 비유한 것 자체가 참신한 것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시인의 내면에 끓고 있는 에로티시즘의 흔적이 더욱 역력히 나타난다는 점이 더욱 주목할만 한 것이다.  <滿開>에서는 더욱 노골적인 표현이 보여진다.





생식기를 활짝 연 벚꽃의/오르가즘이 화창하다//구름같이 피어오른/공개적 집단 정사(情事) //  봄날 /   에로티시즘의/ 극치!              <만개> 전문





우리 전래(傳來)의 습속(習俗)으로 볼 때에, 성적(性的)인 표현은 은근하게, 또는 우회적으로 하는 것이 하나의 멋이었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는 그러한 습성들이 과감하게 깨지는 경향이 보이는데, 이 또한 하나의 흐름이기에 관심을 두고 지켜봐야 할 일이다.


이 시에서는 ‘생식기, 오르가즘, 정사’ 등의 시어들을 볼때, 에로티시즘에 대한 적나라한 표현이 등장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른 여타의 은근한 표현을 즐기는 시인들과는 대별되는 점이기에, 앞으로 이 부분에 대해서는 계속 지켜봐야 할 일이다. 이러한 적나라한 표현은 <굴뚝>에서도 이어진다.





저 시들지 못하는 발기//  밤이 되면 화산이 폭발하듯/  射精하며 하늘을 능욕한다/


별들은 눈물을 흘리며 쫓겨 갔고/ 하늘은 비명을 지르며/거칠게 저항하지만 막무가내다//


알콜에 취해 영상에 홀려/ 아무도알지 못했다/ 엄청난 검은 양심들// 잔잔한 아침 매캐한 목과/ 하늘에 떠 있는 뿌연 띠들만/  밤의 상처를 말해 준다      <굴뚝> 전문




환경의 오염을 지적하는 시인의 목소리가 담겨져 있는 이 시는 그 이미지 처리에 있어서 에로티시즘을 드러내고 있기에 매우 이색적이다. ‘발기, 능욕, 사정’ 등의 시어가 시인의 에로적 심리흔적을 대변해 주고 있다. 특히 굴뚝의 이미지를 ‘발기’이미지로 처리 한 것은 그 유사성에 있어서 밀접하기에 매우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고, 연기를 ‘사정(射精)’이미지로 처리한 것도 매우 이색적이다. 특히, 굴뚝에서 연기를 내뿜는 것을 사정(射精)의 이미지로 처리한 것은 새로운 이미지의 발견이라고 할 수 있는데, 시인의 이러한 독특한 이미지 처리방식은 작품 내에서 의인법을 구사하는 데에서도 드러난다.





1) 후련하슈/어떠슈/시원할 것이외다/좋겠시다/참좋겠시다---중략---/나를 화장시킨         만큼 / 당신을 지워가지고/간다는 것      -<담배>에서




2) 타락했나!/초월했나!//기다림에 지치거든/일찍 단념할 일이지/젊은 시절 서슬 푸른/         날렵한 몸매 먼 산 바래며/갈기 세워 할퀴더니//흰머리 흩날리며 목 빼물고/아무에게      나  손짓할게 뭐람    -<갈대꽃>전문





3)사랑해다오/한 맺힌 넋을/---중략---/초록한번 틔우지 못하고/누룩으로 썪고/주정으로 건져진 영혼/어서 사랑해다오/---중략---/그대 몽롱해 어질어질/핏발 선 눈빛은 내영혼/  


-<술의 노래>에서





담배, 갈대, 술 등을 소재로 하여 그들의 입장을 대변하거나 그들의 심리를 독백형태로 처리하고 있는 이 작품들은  의인법을 사용했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시적 객체와 주체를 조롱하고 있는 듯한 미묘한 분위기를 띈 이 시들은 그 어조에 있어 ‘평이한 말’과 ‘일상어 또는 사투리’를 섞어 독자들에게 친근함을 강조해주고 있다. 그러면서 시인이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의식은 정확히 전달하고 있다.


특히 이러한 시적 어조들은 시인만의 독특한 차용이라고 볼 수 있는데, 시에 있어 이러한 새로운 시도는 시어의 독특한 배열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키큰






푼수


없는


사내가


-<가로등>에서








지하철 출근길 밀물같이


싣고 에스컬레이터는 바삐




올     내


라     려


오     오


고     고


-<움직이는 계단>에서





시는 크게 말하기와 보여주기 수법을 사용한다고 볼 때에, 전통적인 서정시는 말하기의 방법을 선호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위와 같은 시들은 말하기의 서정시의 전통을 이어가면서도 그 이미지를 시어 배열을 통해 강조해 줌으로써 보여주기의 방법을 사용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시인의 또다른 시쓰기 방법에 대한 개척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방법은 여러 시인들에게서 가끔씩 발견되는 것이기도 한데, 장차 우리 시단의 한 조류로 자리잡을 것으로 예상된다.








3. 나오는 말


시인의 정신세계적 특성을 한 묶음의 시들을 통해 조망(眺望)해 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지만 그 내면에 깔린 의식의 깊은 기저(基底)를 들여다 보는 것도 자못 의미있는 일일 것이다.


윤여설 시인의 시들은 현실과 사물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풋풋한 감성을 드러내어 시적 대상을 아이러니 기법으로 다루는 세련미를 보여준다. 그 세련미가 시적 대상을 독특하게 비틀어 보는 방법으로 나타나는데, 그 내부에는 시인의 현실과 관념, 그리고 사물에 대한 열정이 드리워져 있다.


여성을 염두에 둔 듯한 육감적 어조와 독백의 시어들, 그리고 새로운 시어의 배열을 통한 이미지 시편들, 이 모두가 시인의 시에 대한 열정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다.


작품 내부에 시인의 감수성을 드리우면서 시적 대상의 인식적 방법을 새롭게 보여주려는 노작의 흔적이 시인의 시들에는 역력히 드러나 있다.


<고려장>과 같이 환경시의 경향을보여주기도 하고, <굴뚝>같이 에로티시즘을 위장하여 시인의 환경에 대한 독특한 관심을 표현하기도 한다.  <갈대꽃>과 같이 여성적 유혹의 손짓을 묘사하기도 하고 <봄밤>과 같이 남성적인 외로움을 드러내어 ,시인 특유의 “끼”를 발산하기도 한다.


이같은 다양성은 여러 방면으로 관심을 보여주는 시인의 정신적 궤적이다. 그리고 이러한 다양성은 윤시인이 아직은 활발한 활동을 하는 젊은 세대에 속하기 때문에 드어나는 특성으로 보여진다.


그런데 작품의 제목들, 즉 <인연> <삿갓구름> <다듬잇돌> <탑> <살곶이 다리 위에서> <부평초> 등을 본다면, 다분히 전통지향의 성향을 읽어 낼 수가 있다. 단 이러한 전통성향의  작품들이 시인의식의 출발점이 될 지, 또는 도달점이 될 지는 앞으로도 더 지켜봐야 될 일이다.


현재는 시적 대상을 아이러니 기법으로 다양하고도 세련되게 다루고 있는,그리고 미증유  의 새로운 시적 영역을 개척해 나가고있는 감수성 강한, 서정시인으로 평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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