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및 문학행사

[스크랩] 오세영의 시와 시론

윤여설 2012. 12. 11. 18:33

한 밤중 책을 읽다가 외 1편

 

오 세영

 

결말은 무엇일까.

시작 없는 이야기의 끝이

궁금해

온종일 한 권의 소설을 읽는다.

성급한 마음에

몇몇 행은 건너뛰고 몇 단락은

대충대충,

어떤 대목을 읽을 때는 스텐드의 불이 나갔다.

가슴을 저리는 부분이 간혹 없지도 않았지만

대체로 내용은 무미건조,

아, 목말라라, 졸음을 쫓으려 마른 혀로

적셔보는 한 모금의 커피.

그러나 몰려오는 졸음을 이길 수는 없다.

책장을 채 접어놓지도 못한 채 끝내

이 대목에서 잠에 떨어지고 마는

내 인생 69페이지.

 

 

 

 

  여름 산

 

자지러져 검푸르기까지 한

여름 산 짙은 녹음은 차라리

짐승의 무성한 털갈기 같다.

태풍이 치는 밤,

쩌렁쩌렁 우는 그 포효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가.

언뜻 보인다.

번갯불 사이로

온 몸을 땀에 흠뻑 젖은 채

대지에 웅크리고 있는 그 거대한

수컷 한 마리.

주체할 수 없는 욕망에

꽃을 잡아먹어, 새를, 숲을 잡아먹어 마침내

씩씩대며 나를 노려보고 있는 그

맹수 한 마리.

 

 

 

 

 

  근작시

 

피항避港 외 2편

 

명절날

거실에 모여 즐겁게 다과茶菓를 드는

온 가족의 단란한 웃음소리,

가즈런히 놓인 현관의 빈 신발들이

코를 마주대한 채

쫑긋

귀를 열고 있다.

 

내항內港의 부두에

일렬로 정연히 밧줄에 묶여

일제히 뭍을 돌아다보고 서 있는 빈 선박들의

용골.

잠시 먼 바다의 파랑을 피하는 그

잔잔한 흔들림.

 

 

 

 

 

 

 

 한 밤

누가 인적 없는 골목길에 이처럼

화안히

보안등을 밝혀두었나.

어느 별이 소리 없이

C C TV 로 사진을 찍고 있나.

 

나 죽으면 저 세상에서 낱낱이

추궁 받으리. 심판 받으리.

 

 

 

 

천문대

 

 하늘 나라 백화점은

도시가 아니라 한적한 시골에 있다.

온 하늘 찌든 스모그를 벗어나,

광란하는 네온 불빛들을 벗어나

청정한 산 그 우람한 봉우리에 개점한

매장.

 

하늘 나라 백화점은 연말연시가 아니라

대기 맑은 가을밤이 대목이다.

아아, 쏟아지는 은하수,

별들의 바겐 세일.

부모의 손목을 잡은 채 아이들은 저마다 가슴에

하나씩 별을 품고

문을 나선다.

 

오세영

1965-68년『현대문학』등단

시집 : 『밤하늘의 바둑판』, 『바람의 그림자』외

현 : 서울대 명예교수

 

 

 

 

 오세영론

 

서정적 은유 시학의 오롯한 성취

-오세영의 근작

 

유성호

 

 

1. 존재론적 자각에 이르는 과정

 

오세영吳世榮 시인은 1965년 등단한 이래 반세기 가까운 시력詩歷을 지속해오면서, 감각적 현존에 대한 예민한 의식과 그에 대한 형이상학적 열정을 통해 인간의 근원적 존재 조건을 깊이 천착해왔다. 그는 그 결실로서, 세계내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삶을 은유하는 ‘그릇’ 이미지를 완성한 바 있다. 완성과 균열의 가능성을 동시에 지닌 ‘그릇’은 오세영 초기시의 철학적 속성을 대변하는 사물 이미지로서, 유한자有限者로서의 인간의 존재 조건에 대한 적실하고도 개성적인 은유적 상관물로 우리 시사詩史에 남았다. 이처럼 오세영 시인은 유한한 인간의 운명을 예리하고도 견고한 이미지에 실어 보여줌으로써 인생론적 고전주의자로서의 면모를 확연하게 보여주었다.

또한 오세영 시인은 삶의 근원적 문제 탐구 과정을 ‘사랑’의 형식으로 노래하면서, 만남과 헤어짐, 원심과 구심, 번뇌와 해탈 등이 우리 삶의 불가피한 양면 형식임을 집중적으로 보여주었다. 그에게 ‘시’란, 삶의 양면성과 유현성幽玄性을 담을 유일한 그릇이었던 셈이다. 그의 시는 어느새 투명한 그릇이 되어 시인 자신의 철학을 명징하고 단순화한 언어 형식으로 담아내게 된다. 이처럼 오세영 시인은 인생론적 고전주의자로서의 면모를 예의 철학성과 서정성의 결속을 통해 일관되게 추구해왔고, 그 이면에 좀 더 근원적인 언어 감각을 펼쳐놓았다. 그 안에 강렬하고 견고한 이미지군群, 존재 탐구를 위한 형이상학적 열정, 원형 이미지를 통한 내면 탐구, 사랑의 원리로 수렴되는 삶의 탐색 등 서정시의 다양한 본원적 권역을 우리 시사에 제시한 것이다.

물론 오세영 시인의 시적 궤적을, 어느 한 방향으로의 선형적 진보나 퇴행으로 그려낼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매우 중층적이고 나선적인 심화와 변형 과정을 거쳐 온 것이기 때문이다. 첫 시집 ?반란하는 빛?(1970)으로부터 그는 일관되게 형이상학적이고 존재론적인 상징체계를 지속하면서 개인의 내밀한 서정성을 강화해왔다. 하지만 이러한 일관된 시적 태도 속에서도 최근에는 은유적 사유와 표현 방식에 집중하는 모습으로 정향定向하는 새로움을 보여준다. 물론 그 안에 지성적 관조 양상은 지속되고 있지만, 그보다는 사물과 주체의 접점에서 피워 올리는 서정의 세세한 결을 은유 시학으로 길어 올리는 데 깊이 주목하는 것이다. 특별히 이번에 소개되는 근작近作들은 자연 사물이나 일상생활 속에서 일종의 존재론적 자각에 이르는 과정을 심미적 은유 시학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서정시 고유의 미적 차원을 제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으로써 시인은 그동안 펼쳐왔던 시적 생애의 연속선상에서 ‘지금 여기’로 그 시적 활력을 재현해낸다. 그 확연한 실례가 되는 작품들을 통해 오세영 시인의 최근 시세계를 살펴보도록 하자.

 

2. 인생론적 서정과 은유 시학

 

서정시의 심층적 운명은 ‘근대의 저편’을 응시하면서 우리가 잃어버린 일종의 ‘근원’에 대한 그리움을 현재화하는 데서 발원하고 완성된다. 오세영 시편들은 우리 삶의 표면적 실체성이 아니라 육안으로 가 닿기 힘든 일종의 ‘근원’을 지향하는 시선으로 짜여 있다는 점에서 서정시의 심층을 대변한다. 그 양상은 심미적 이성에 의해 실재와 상상을 통합하며 ‘근원’을 암시하는 서정시의 고전적 기능을 더해가는 쪽으로 실현된다. 최근 씌어진 시편들은 이러한 서정시의 고전적 심도를 뚜렷하게 점증漸增해간다. 시인이 자선自選한 근작들을 통해 이렇게 인생론적 서정의 심도深度를 개척해간 시적 사례들을 검토해보자.

 

명절날

거실에 모여 즐겁게 다과茶菓를 드는

온 가족의 단란한 웃음소리,

가즈런히 놓인 현관의 빈 신발들이

코를 마주 대한 채

쫑긋

귀를 열고 있다.

 

내항內港의 부두에

일렬로 정연히 밧줄에 묶여

일제히 뭍을 돌아다보고 서 있는 빈 선박들의

용골.

잠시 먼 바다의 파랑을 피하는 그

잔잔한 흔들림.

― 「피항避港」 전문

 

이 시편은 두 연이 각각 다른 풍경을 묘사하면서, 그 두 풍경으로 하여금 서로 유추적으로 연관되게 하는 작법作法을 택했다. 말하자면 두 연이 서로 은유 관계에 놓이게 된 셈이다. 1연에서는 명절날 한자리에 모인 가족의 모습이 ‘웃음소리’와 ‘신발’을 통해 묘사되고 있다. 거실에 모여 즐겁게 다과를 들고 있는 한 가족의 단란한 ‘웃음소리’와 서로 마주 보며 귀를 쫑긋 한 채 그 웃음소리를 듣고 있는 현관의 ‘빈 신발’들이 그러한 가족들의 모습을 충실하게 담아낸다. 2연에서는 화자의 시선이 전혀 다른 곳을 향하여, 어느 내항 부두로 옮아간다. 거기에 일렬로 밧줄에 묶여 뭍을 돌아다보고 서 있는 ‘빈 선박’들의 용골이 배치된다. 원래 ‘용골’이란 사람의 등뼈와도 같이 선체 골격의 기초가 되며 선체를 받치는 구실을 한다. 그 ‘용골’을 두고, 화자는 잠시 먼 바다의 파랑波浪을 피해 있는 “잔잔한 흔들림”으로 묘사한다.

그렇다면 이 두 풍경은 어떻게 은유적 등가로 결합하는가. 물론 ‘피항’이라는 제목은 2연에만 직접 연결되는 것일 터이다. 하지만 1연의 단란한 가족들도 잠시 세파世波를 피해 명절날 모인 것으로 보아 ‘피항’ 이미지로 수렴된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명절날이 되어야 모여서 한시적 단란함을 누리는 가족이 제시되면서, 평소에는 거친 파랑과 마주서 가파르게 살아가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후경後景처럼 가물거리고 있다. 특별히 ‘빈 신발’과 ‘빈 선박’의 이미지가 상호 결속하면서, 그리고 ‘용골’처럼 흔들리며 살아갈 가족들의 신산함이 암시되면서, 이 시편은 서경敍景 시편이 아니라 생의 속성을 들여다보는 투시透視 시편으로 다가오게 된다. 오세영 은유 시학이 거둔 명료한 성취가 아닐 수 없다.

 

한밤

누가 인적 없는 골목길에 이처럼

화안히

보안등을 밝혀두었나.

어느 별이 소리 없이

CCTV로 사진을 찍고 있나.

 

나 죽으면 저 세상에서 낱낱이

추궁 받으리. 심판 받으리.

― 「달」 전문

 

근대시 전체 권역에서 가장 즐겨 다루어졌던 제재인 ‘달’이 화자의 감각에 선명하게 포착되었다. 가령 그것은 한밤중 인적 없는 골목길에 화안히 밝혀진 ‘보안등’으로 은유된다. 그리고 어느새 ‘별’들도 소리 없이 사진을 찍는 ‘CCTV’로 나선다. 이렇게 ‘달/별’이 화자의 일거수일투족을 환하게 밝히고 심지어는 꼼짝달싹 못하게 사진을 찍고 있으니, 화자로서는 죽어 저 세상에서 그 행적들을 “낱낱이/추궁” 받고 급기야는 ‘심판’ 받을 것이 아닌가. 결국 일차적으로 ‘달’과 ‘별’은 화자의 마음을 밝히는 천체이지만, 이차적으로 그것은 추궁과 심판을 가함으로써 화자 자신의 삶을 반성적으로 사유하게 하는 기능을 떠맡게 된다. 그때 화자는 ‘달/별’로 하여 생의 반어적 진실에 눈을 뜬다. 이러한 ‘달/별’의 속성을 활용하여 인생의 진실에 눈을 떠가는 과정은, 세속 경험이 신성한 사물에 투사되어 나타나는 일종의 은유 시학을 구현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비록 삶의 어둑한 풍경을 노래하고 있지만 그 안에는 가장 근원적인 인간 실존의 긍정적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남다른 천체적 상상력은 다음 시편으로도 환하게 이어진다.

 

하늘나라 백화점은

도시가 아니라 한적한 시골에 있다.

온 하늘 찌든 스모그를 벗어나,

광란하는 네온 불빛들을 벗어나

청정한 산 그 우람한 봉우리에 개점한

매장.

 

하늘나라 백화점은 연말연시가 아니라

대기 맑은 가을밤이 대목이다.

아아, 쏟아지는 은하수,

별들의 바겐세일.

부모의 손목을 잡은 채 아이들은 저마다 가슴에

하나씩 별을 품고

문을 나선다.

― 「천문대」 전문

 

여기서도 아름다운 시원始原의 심상이 농울 친다. 화자가 꿈꾸는 ‘하늘나라 백화점’은 온 하늘이 스모그로 찌들고 네온이 광란하는 도시에 있지 않고 모든 것이 한적하기만 한 시골에 있다. 청정하고 우람한 산봉우리가 있는 한적한 시골에 백화점이 문을 연 것이다. 또한 그 ‘하늘나라 백화점’은 사람으로 붐비는 연말연시가 아니라 대기 맑은 가을밤이 대목이다. 왜냐하면 쏟아지는 은하수나 별들이 거기서 바겐세일을 하기 때문이다. 그때 부모 손목을 잡은 아이들은 저마다 가슴에 “하나씩 별”을 품고 문을 나서게 된다. 시편 제목이기도 한 ‘천문대’라는 매개를 통해, 가을밤의 아름다운 별무리를 관찰한 결과를 ‘하늘나라 백화점’이라는 무구無垢한 은유로 그려낸 산뜻한 작품이다. 역시 천체적 물질성과 ‘백화점’의 메커니즘을 결속하여 실감을 높인 은유 시학의 결실이라 할 것이다. 이러한 기법과 사유 방식이 한결같이 상호 “관계를 통한 우주 생명의 어울림 속에서 자연스럽게”(이재복)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오세영 근작들은 풍경 묘사와 내적 유추를 동반함으로써 은유적 긴장을 유지하는 방법을 일관되게 보여준다. 깊은 근원에까지 가 닿아 자신의 생을 반성적으로 성찰하는 한편, 선명한 이미지로 빛나는 한 순간을 포착하여 그 은유적 아름다움을 경험케 하는 방법을 다양한 음역音域으로 보여준 것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은유’란 두 사물이나 관념 사이에 개재하는 ‘차이성 속의 유사성’에 근거하여 성립되는 언어 규칙이다. 그래서 ‘은유’는 이질적 대상 간의 긴장된 의미 작용의 결과이자 바탕이 된다. 이러한 사물이나 관념 사이의 등가적 유추라는 표현 원리를 다시 한 번 확인하면서, 오세영 시인은 표층적 차원의 은유가 아니라 삶의 심층적 차원의 은유를 두루 활용하고 있다. 서정의 골격을 ‘은유’로 세우면서 이질적인 두 장면 혹은 사물이나 관념 사이의 간극을 유추적으로 결속하는 시인의 상상력이 견고하고 아름답게 짜여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3. 해석적 개입을 통한 풍경 묘사와 배열

 

문학 작품 안에서 풍경 묘사의 본질은, 더 이상의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 건조한 사실적 보고報告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서정시에서 풍경 묘사는 사물의 순수한 외관을 객관적으로 담기보다는, 화자의 해석적 개입을 통해 풍경을 선택적으로 묘사하고 배열하려는 욕망을 지니게 된다. 우리가 보편적 서정의 원리를 떠올릴 때, 불가피하게 주체 환원의 속성을 승인할 수밖에 없는 것도 이러한 까닭에서일 것이다. 따라서 서정의 원리는 화자의 시선을 통해 사실적 풍경을 묘사하면서도, 동시에 그 풍경 안에서 우리 삶의 다양한 육체를 속속들이 발견하게끔 세심한 배려를 마다하지 않는다. 이때 선택되고 배열된 풍경은 그 사실적 외관과 함께, 화자의 삶에 대한 적극적인 해석적 개입이 착색된 것이다. 이러한 속성을 두루 충족하고 있는 오세영 시인의 신작들을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

 

결말은 무엇일까.

시작 없는 이야기의 끝이

궁금해

온종일 한 권의 소설을 읽는다.

성급한 마음에

몇몇 행은 건너뛰고 몇 단락은

대충대충,

어떤 대목을 읽을 때는 스탠드의 불이 나갔다.

가슴을 저리는 부분이 간혹 없지도 않았지만

대체로 내용은 무미건조,

아, 목말라라, 졸음을 쫓으려 마른 혀로

적셔보는 한 모금의 커피.

그러나 몰려오는 졸음을 이길 수는 없다.

책장을 채 접어놓지도 못한 채 끝내

이 대목에서 잠에 떨어지고 마는

내 인생 69페이지.

― 「한밤중 책을 읽다가」 전문

 

시의 화자는 자신의 생을 ‘책 읽기’ 과정으로 비유하고 있다. 한 권의 소설이 가지는 시작과 결말은 곧 삶의 그것으로 치환된다. 이야기의 끝이 궁금해 온종일 소설을 읽었지만, 때로는 성급한 마음으로 몇 행 건너뛰기도 하였고, 아예 몇 단락 대충 넘어가기도 하였고, 급기야 어떤 대목에 이르러 스탠드 불이 나가기도 하였다. 이 단속적 과정이 바로 삶에 대한 더없이 투명한 은유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뛰어넘어가며 읽은 책은, 간혹 가슴 저리는 부분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참으로 ‘무미건조’한 것이었다. 그러니 화자는 목마름과 졸음을 호소하면서 마른 혀로 한 모금 커피를 적셔보기도 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책장을 접어놓지도 못한 채 그 대목에서 잠에 떨어지고 만 화자는, 자신의 연치年齒를 암시하는 “내 인생 69페이지”를 통해 삶이라는 것이 그렇게 가슴 저리기도 하고 무미건조하기도 한, 혹은 집중을 요하기도 하고 대충 넘어가기도 하는 것임을 선연하게 알려준다. ‘책=인생’의 등가적 은유가 다시 한 번 실감 있게 전해져오는 사례이다. 이때 우리는 화자가 선택적으로 묘사한 풍경의 사실적 외관보다는, 그것이 은유하는 속 깊은 이면 풍경 곧 화자의 해석적 개입이 착색된 삶의 한 단면斷面을 선명하게 바라보게 된다.

 

자지러져 검푸르기까지 한

여름 산 짙은 녹음은 차라리

짐승의 무성한 털갈기 같다.

태풍이 치는 밤,

쩌렁쩌렁 우는 그 포효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가.

언뜻 보인다.

번갯불 사이로

온 몸을 땀에 흠뻑 젖은 채

대지에 웅크리고 있는 그 거대한

수컷 한 마리.

주체할 수 없는 욕망에

꽃을 잡아먹어, 새를, 숲을 잡아먹어 마침내

씩씩대며 나를 노려보고 있는 그

맹수 한 마리.

― 「여름 산」 전문

 

이 시편은 ‘여름 산’이라는 대상에 대한 핍진한 묘사를 통해 생의 원시적 건강성을 희원하는 화자의 마음을 담고 있다. 검푸른 ‘여름 산’의 짙은 녹음을 두고 화자는 그것을 “짐승의 무성한 털갈기”로 은유한다. 자연스럽게 태풍 치는 밤 ‘여름 산’은 쩌렁쩌렁 포효소리를 낸다. 번갯불 사이로 온몸이 땀에 젖어 대지에 웅크리고 있는 거대한 수컷 한 마리의 형상은, 산의 사실적 외관에서 유추된 것이기도 하지만, 화자가 파악하고 해석적으로 유추한 산의 원시적 건강성이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그 ‘여름 산’이 주체할 수 없는 욕망에 ‘꽃’과 ‘새’와 ‘숲’을 온통 잡아먹은 채 화자마저 노려보고 있다. 이러한 원시적 야수성을 견지한 “맹수 한 마리”로서의 ‘여름 산’이야말로 우리가 ‘산’이라는 정태적 대상으로부터 발견하기 어려운, 그리고 시의 화자가 돌올하게 희원하는 마음의 상像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할 것이다. 오세영 시인의 이 푸르른 마음을 두고 어느 시인은 “푸른 고집의 시인”(이재무)이라고 표현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원시적 건강성의 화두는, 그가 ‘생태시집’이라는 기획으로 펴낸 ?푸른 스커트의 지퍼?(2010)에 풍요롭게 갈무리되어 있다.

잘 씌어진 서정시는 신생과 소멸의 변증법을 통해 우리 일상에 편재遍在해 있는 불모성과 소통 단절을 치유하고 새로운 소통의 가능성을 꿈꾸게 한다. 그것은 신생과 소멸을 존재의 양면성으로 바라보면서, 복합성의 시선으로 삶을 관조하는 에너지에서 생성된다. 그 에너지가 시인 자신의 몸속에서 일어나는 움직임을 묘사함으로써 생명 감각의 묘사를 제일의적 기율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오세영 시인의 근작들은 이렇듯 우리 몸 안팎에서 지워질 법도 한, 그리고 몸 안팎에 가득한 신생과 소멸의 복합적 풍경을 상상적으로 복원해놓았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서정시가 가질 법한 삶의 역설적 항체抗體로서의 역할을 좀 더 강렬하게 유추 받게 된 것이다.

 

 4. 시적 순간의 가치, 그 영속성

 

이야기문학의 근간인 ‘내러티브’가 존재의 연속성에 관심을 가지는 데 비해, ‘서정’은 존재의 순간성과 그에 대한 반응에 일차적 관심을 둔다. 그만큼 우리는 서정시를 통해, 그것이 사물이건 사람이건 어떤 감각적 이미지건, 그것들이 부여한 지극한 순간Augenblick의 미적 작용을 경험하게 된다. 결국 서정시는, 인과적 계기나 시간적 경과를 중시하지 않는 대신, 사물의 이치를 순간적으로 포착하고 표현하는 데 공을 들인다. 물론 이때의 ‘순간’은 일회적 시간성 개념이 아니라, 이른바 ‘충만한 현재형’으로서의 순간을 적극 함의한다. 말하자면 서정시가 구현하는 순간이야말로, 과거/현재/미래를 모두 하나로 통합한 충만한 현재형으로서의 집중된 시간 형식을 뜻하는 것이다. 그래서 ‘시적 순간’은 존재의 오랜 경험과 시간이 반복되고 축적되어 있는 집중 형식으로서의 ‘순간’이 된다. 시인들은 이러한 순간을 원체험과 매개하는 기억을 통해 풍경을 재현하고 그때의 순간을 상상적으로 구성해낸다. 오세영 시인의 근작들이 견지하고 있는 ‘순간’의 미학은, 그 자체로 ‘충만한 현재형’으로 몸을 바꾸면서, 우리의 감각과 사유를 충실한 은유 시학으로 보여주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가 노래하는 지극한 순간을 통해 ‘시적 순간’의 순연한 가능성을 실감으로 목도하게 된 것이다.

전통적으로 시적 감정은 숭고한 방향으로,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방향으로, 심미적 효과를 이루는 방향으로 조직되어왔다. 하지만 현대시로 올수록 비속성 그대로가 노출되기도 하고, 일탈과 부조화 또는 해체의 시학으로 나아가기도 하고, 추醜의 미학을 보이는 경향으로 나아가기도 하였다. 하지만 오세영 시편들은 여전히 시의 숭고함, 균형, 조화, 심미성을 지향하는 은유 미학을 지속하고 있다. 미더운 일관성 속에서 경쾌한 변격變格을 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시인은 서정시야말로 가장 세련된 소수 장르이고, 여전히 인류의 시원始原에서 발원하여, 비인간화 방향으로 내닫는 현대 사회의 숨길을 트는 강력한 문화적 항체임을 열렬히 증언하고 있다. 인생론적 서정의 심도와 삶의 해석적 개입을 통한 풍경 묘사와 배열에 의해 씌어진 그의 근작들 역시, 명료한 정보나 합리적 이성보다는 풍요로운 정서와 실감을 중시하는 서정시의 속성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성과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더 깊은 서정적 은유 시학을 오롯하게 성취해갈 그의 후기 시편들이, 이러한 ‘시적 순간’으로서의 가치를 영속적으로 지켜갈 것을, 신뢰와 기대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유성호

저서 : ?상징의 숲을 가로질러?, ?침묵의 파문?, ?움직이는 기억의 풍경들? 외

현 : 한양대학교 국문과 교수.

  - 계간 『시와 표현』 2012년 여름호

 

출처 : 세상과 세상 사이
글쓴이 : 장자의 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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