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성곽, 600년 만에 부활을 꿈꾸다
- 테마분류 ㅣ 역사
- 등 록 일 ㅣ 2011-06-22
- 관련자료 ㅣ 7개
얼마 전, 서울성곽 18,267km구간이 2014년까지 복원된다는 소식이 언론을 통해 보도된 적이 있습니다. 조선의 수도 한양을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진 서울성곽은 조선왕조 500년 동안 이어져 내려왔으나,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많은 부분이 훼손되었습니다. 지난 36년간 꾸준히 복원작업을 진행한 끝에 현재 12,210㎞를 복원한 상태이지만, 중간 중간 끊긴 곳이 많아 제대로 둘러보려면 미로 찾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지요.
성곽 복원 작업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는 요즘, 지식자원관리사업으로 구축된 문화재 학술조사 연구정보 DB(http://www.nricp.go.kr)의 도움을 받아 조상들의 호국정신이 깃든 귀중한 문화유산인 서울성곽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우리나라의 성곽
성곽이란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흙이나 돌 등으로 구축한 방어시설로, 내성(內城)만을 뜻하는 ‘성(城)’과 외성(外城)을 가리키는 ‘곽(郭)’의 합성어입니다. 주로 군사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졌지만 평시에는 행정적인 기능을 겸하기도 했고, 성곽 자체가 지배자의 권위를 높여주는 상징적인 기능을 하기도 했습니다. 인류 역사를 살펴보면 성곽은 이미 고대로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형적 조건과 지역적 특수성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져 왔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산지가 많은 자연 지세의 이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성곽을 만들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산성(山城)’입니다. 산정(山頂)이나 능선을 따라 적의 습격에 대비해 쌓아놓은 산성은 험준한 지형을 이용하여 방어력을 극대화시킨 것은 물론 외적이 침입했을 땐 민간인의 피난처 역할도 했습니다.
▶ 수원성곽 출처 : 장서각 소장 국학자료 ☞ 바로가기 |
성곽은 성벽과 성문을 비롯하여 성 내외에 만들어진 여러 부대시설을 포함합니다. 대표적인 시설로는 성벽 주변의 땅을 파서 고랑을 내거나 자연하천 등의 장애물을 이용하여 성의 방어력을 증진시키는 시설인 ‘해자(垓字)’, 성벽 위에 쌓은 작고 낮은 담인 ‘여장(女墻)’, 구석지면서 출입이 편리한 곳에 뚫어놓은 비밀통로인 ‘암문(暗門)’, 성문 밖에 붙여서 성문을 가리도록 쌓아놓은 담인 ‘옹성(甕城)’, 성벽의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하여 밖으로 돌출시켜놓은 시설인 ‘치성(雉城)’, 성벽의 모서리를 지키며 성안의 전투를 지휘하는 시설물인 ‘각루(角樓)’ 등이 있습니다.
▶ 성벽으로 건축된 평양의 각루 출처 : 국립문화재연구소 ☞ 바로가기 |
성곽을 만들 땐 나무, 흙, 돌 등 주변에서 얻기 쉬운 재료를 주로 사용했는데, 전통적으로 가장 선호한 재료는 석재였습니다. 돌의 채취와 운반, 가공이 어려워 축조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지만, 일단 축조해 놓으면 내구성과 방어력이 우수한 탓에 나무나 흙으로 만든 성곽에 비해 상대적으로 오래 보존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실제로 수적으로 가장 많은 성곽은 토성이지만 잔존하는 성곽의 대부분은 석성이라는 사실이 이를 증명해주고 있지요.
우리나라 성곽은 평지에 조성된 일부 성곽을 제외하고는 대개 자연적인 지형을 그대로 이용하기 때문에 평면상으로 볼 때 대단히 복잡한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도성이나 읍성처럼 평지에 조성한 성곽들도 풍수지리의 영향으로 배산임수를 고려하여 축조하는 탓에 자연적으로 부정형의 형태를 이루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위치 선정은 사람의 힘을 가장 덜 들이고 적을 방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형의 유리함을 최대한 활용한 예라 할 수 있습니다.
>> 서울성곽
서울성곽은 조선의 도읍지인 한양을 둘러싸고 있는 도성(都城)입니다. 조선건국 초, 한양으로 수도를 옮기기 위하여 궁궐과 종묘를 먼저 지은 태조는 1395년 도성축조도감을 설치하고 한양을 방위하기 위해 1396년부터 연인원 11만 8070명을 동원하여 성곽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워낙 방대한 규모의 공사였던 탓에 전체 성곽을 97개 구간으로 나눈 뒤 각 구간별로 군현을 지정하여 그 지역 사람들이 성을 쌓았는데, 이때 각 구간에는 천자문 순서대로 성돌에 글자를 새겨 넣었다고 합니다.
성곽은 인왕산, 북악산, 낙산, 남산의 능선을 따라 석성과 토성으로 축조되었으며, 4대문과 4소문을 두었습니다. 4대문은 흥인지문ㆍ돈의문ㆍ숭례문ㆍ숙정문을, 그리고 4소문은 홍화문ㆍ광희문ㆍ창의문ㆍ소덕문을 말합니다. 동대문에만 성문을 이중으로 보호하기 위한 옹성을 쌓았고, 북문인 숙정문은 원래 숙청문이었는데 이 숙청문은 비밀통로인 암문이었던 탓에 문루(門樓)를 세우지 않았습니다. 암문이란 전시에 적을 기습 공격하거나 군수품을 조달할 수 있도록 적군의 눈에 띄지 않도록 만든 비밀통로로, 서울성곽에는 총 8개의 암문이 있습니다.
▶ 숙정문 복원 공사 출처 : 한국방송정책원 ☞ 바로가기 |
태조 때 처음으로 축조된 서울성곽은 세종 4년(1422년) 대대적으로 고쳤는데, 흙으로 쌓은 부분을 모두 돌로 다시 쌓고 공격ㆍ방어시설을 늘렸습니다. 이때에도 군현별 담당 구역을 지정하여 작업을 진행했는데, 당시 동원된 사람의 수가 무려 32만 2400명이었다고 합니다. 숙종 30년(1704)에도 대규모의 보수공사가 진행되었는데, 근대화된 축성기술을 바탕으로 정사각형의 돌을 다듬어 벽면이 수직이 되게 쌓았습니다.
▶ 혜화문 (옛 흥화문) 출처 : 국립문화재연구소 ☞ 바로가기 |
이처럼 서울 성곽은 여러 번에 걸쳐 수리를 하였으나, 쌓는 방법과 돌의 모양이 각기 달라 쌓은 시기를 구분할 수 있습니다. 태조 때 축성된 성곽은 맨 아래 큰 화강암을 깔고 그 위에 다듬지 않은 자연석을 불규칙하게 쌓아 올렸고, 세종 때 쌓아올린 돌은 크기가 더 크고 모양은 직사각형에 가까워졌습니다.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작은 돌을 쌓았는데, 돌과 돌 사이의 틈새에 더 작은 돌을 끼워 넣기도 했지요. 숙종 때 이르러서는 정사각형 모양의 돌을 틈새 없이 정교하게 쌓은 것이 특징인데, 이러한 축성법은 이후 조선 말기까지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꾸준히 정비되고 보수되어 온 서울성곽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많은 구간이 훼손되었습니다. 광복 이후에도 무분별한 도시화로 인해 상황은 별반 다를 것이 없었으나, 1975년 삼청지구(창의문-숙정문)의 서울성곽 2,570m를 복원하는 것을 시작으로 지난 36년간 성북ㆍ광희ㆍ남산ㆍ청운ㆍ삼선ㆍ동숭 지구 등을 꾸준히 복원해 현재 12,210㎞가 복원된 상태입니다. 현재 서울시에서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목표로 2014년까지 복원작업을 마무리할 계획이며, 도로나 주택으로 끊겨 복원이 어려운 5,127㎞ 구간은 육교식 성곽이나 방향표시 지형물을 설치하는 ‘형상화 방식'으로 연결하기로 하고 이를 추진 중에 있습니다.
>> 서울성곽 코스
역사와 문화, 자연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서울성곽은 도시 속 트래킹코스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현재 종로구에서는 ‘스탬프 투어’를 운영하고 있는데, 4대문 지점에서 4개의 스탬프를 모두 모은 사람들은 완주기념 배지를 받을 수 있어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성곽을 둘러보는데 있어 특별히 정해진 코스가 있는 건 아니지만, 각 산을 중심으로 크게 4개의 코스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 서울 성곽 코스 |
> 남산코스 (숭례문 - 장충체육관)
숭례문에서 시작하여 백범광장, 안중근의사 기념관, 잠두봉 포토아일랜드, N서울타워(봉수대, 팔각정), 남측 포토아일랜드, 소나무 탐방로, 국립중앙극장, 우수조망소, 성벽길, 장충체육관으로 이어지는 코스입니다. 성곽이 끊어졌다 이어졌다를 반복하고 있지만, 태조 때 쌓은 성곽이 비교적 원형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출발지인 숭례문은 성곽의 정문으로, 남쪽에 있다 하여 '남대문'이라고도 불렀습니다. 원래 서울에 남아 있는 목조 건물 가운데 제일 오래된 것이었으나 2008년에 일어난 방화로 인해 소실되었습니다.
> 낙산코스 (장충체육관 - 혜화문)
장충체육관에서 시작하여 광희문, 동대문 역사문화공원, 이간수교, 오간수교, 전태일 거리, 흥인지문, 낙산공원, 삼선4구역, 혜화문으로 이어지는 코스입니다. 이 코스의 경우 도심 골목길을 누비는 재미가 있는 반면, 성곽을 찾기 쉽지 않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장충체육관에서 광희문까지 가기 위해서는 천주교 신당동성당, 장충아트빌라, 광희문교회를 지나야 합니다.
> 북악산 코스 (혜화문 - 창의문)
혜화문에서부터 와룡공원, 숙정문, 촛대바위, 곡장, 청운대, 백악마루, 창의문으로 이어지는 코스입니다. 내사산 중에서 가장 높은 북악산을 오르는 코스로, 이 지역은 군사보호지역인 탓에 신원확인을 절차를 거친 뒤 본격적인 성곽 탐방이 가능합니다. 사진 촬영 역시 지정된 장소에서만 허용되며, 정해진 탐방로를 벗어나서는 안 됩니다.
> 인왕산 코스 (창의문- 숭례문)
창의문을 시작으로 시인의 언덕, 인왕산 정상, 국사당, 경교장, 돈의문 터, 정동길, 옛 러시아공사관 터, 서울시립미술관, 소의문터, 숭례문으로 이어지는 코스입니다. 인왕산 등산로를 따라 성곽을 만들었기 때문에 다른 코스에 비해 힘이 들긴 하지만, 인왕산의 정취를 마음껏 느끼고 멋진 전망을 감상할 수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입니다.
>> 2014년 완공 예정 구간
서울성곽 일부 구간은 도로와 주택, 건물 등으로 끊겨 복원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에 서울시에서는 이러한 구간을 육교식 성곽이나 방향표시 지형물을 설치하는 ‘형상화 방식'으로 연결할 계획을 세우고 2014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현재 공사 중인 원형 복원구간 13.5Km와 형상화 구간 5.127Km를 합친 총 18.627㎞가 복원되면 서울은 세계 유일의 성곽도시로 재탄생하게 됩니다.
형상화 작업은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세 가지 형태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우선 도로로 단절되었지만 양쪽에 성곽이 온전하게 남아 있는 392m 구간은 성곽 형태의 구름다리를 놓아 연결하는 방식으로 복원될 계획에 있습니다. 이 방식이 적용되는 구간은 숭례문 서쪽과 창의문, 서울시장 공관, 혜화문, 낙산공원, 흥인지문, 장충단길 남소문지, 소월길 일대입니다.
성곽의 흔적은 남아 있지만 양쪽을 이을 만큼 높이가 확보되지 않아 구름다리를 연결할 수 없는 구간은 도로 바닥에 성곽 선을 따라 화강암을 깔거나 표지판을 새기게 됩니다. 광희문과 장충체육관 등 총 36곳, 734m 구간에 이 방식을 적용할 계획이며, 숭례문과 대한상공회의소 사이의 128m 구간은 사대문 안 도성으로 진입하는 시발지라는 상징성을 감안해 상부와 하부 형상화 작업을 병행할 예정입니다.
마지막으로, 도시화와 주택가 조성으로 인해 성곽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서소문-사직단, 혜화동, 흥인지문-장충동 등 약 4㎞ 구간에는 인근 보도블럭을 따라 성곽 방향표시 지형물이 설치될 예정입니다. 이 지형물은 누구나 쉽게 성곽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도록 성곽 성문 형태로 제작해 2m 간격으로 설치될 계획입니다.
※ 참고자료
1. <한국의 성곽>, 손영식, 주류성, 2009
2. <순성의 즐거움 - 서울성곽 600년을 걷다>, 김도형, 효형출판, 2010
3. 네이버 지식사전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04879)
4. 북악산 서울성곽 (http://www.bukak.or.kr/index.asp)
5. 종로구 역사문화관광(http://tour.jongno.go.kr/TourSubMain.do?menuId=01010101&tour=03)
6. 문화재청
- 국가지식포털 객원기자 주유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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