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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이성계의 어진이 전시된 경기전 그리고 어진박물관!

윤여설 2011. 2. 6. 21:00

문화재사랑 2011.01.31 15:49

 

 

 

 

 

 

경기전은 조선이 건국되자 왕기를 공고히 하기 위하여 세워진 것으로서 태조의 어용을 봉안하였으며, 태종 14년(1414년)에 건립되었습니다. 전주, 경주, 평양 등은 창건 당시에는 어용전이라 불리었는데, 태종 12년(1412년)에는 태조진전이라 하였다가, 세종 24년(1442년)에 전주는 경기전, 경주는 집경전, 평양은 영숭전이라 하였는데요, 선조 25년(1592년) 임진왜란으로 네 곳에 있었던 태조 어용전은 전부 소실되지만 경기전은 선조 30년(1597년)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가, 광해군 6년(1614년) 11월에 중건되었습니다.

 

 

경기전으로 들어가기 전 가장 먼저 마주치게 되는 이 비는 "하마비 (下馬碑)"라고 하는데요,

 

하마비 (下馬碑)는 : 조선시대에 신분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이 비 앞으로 지나갈 때에는 누구든지 말에서 내리라는 뜻으로 새긴 표식이라고 합니다. 왕, 장문 또는 벼슬이 높은 유명한 성인들의 태생지나 사당앞에 세웠고 경의를 표하는 뜻에서 말에서 내리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곳 경기전은 조선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신곳이기에 지나는 사람은 말에서 내리고 아무나 출입하지 말라는 뜻으로 하마비를 1614년에 세웠다고 합니다.

 

 

 

하마비를 지나, 첫번째 홍살문을 지나 홍살문에서 외살문으로 향합니다.

 

 

 

외살문을 지나,  내삼문에 이르게 되면 드디어 경기전이 보입니다.

경기전정전은 태종10년(1410)에 세워졌습니다. 태조의 초상화를 보관하는 건물은 원래 개성, 영흥, 전주, 경주, 평양 등 다섯 곳에 있었는데, 경기전 정전을 제외한 나머지는 임진왜란(1592)때 모두 불에 타버렸다고 합니다. 경기전정전도 정유재란(1597)때 불탔으나, 광해군 6년(1614)에 다시 세워졌습니다.

 

▲ 이성계 어진 ⓒ연합뉴스

 

 

현재 경기전 어진은 고종 9년(1872년) 9월에 개화한 것이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재빨리 내장산에 피난하였다가 정읍, 태인, 익산, 용안, 임천, 은산, 정산, 온양, 아산을 거친 다음 강화도, 안주를 경유하여 묘향산, 보현사 별전에 봉안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에도 인조 14년(1636년) 병자호란 때는 무주 적상산성에 피난했다가 돌아온 일이 있었으며, 영조 43년(1767년)이른바 정해대재 때는 전주향교 명륜당에 긴급 피난하기도 하였으며, 고종 31년(1894년)에는 동학군의 전주입성으로 한때 위봉산성에 피난하기도 했다고합니다. 경기전에 인접한 북쪽에 전주이씨의 시조인 이한 공과 시조비의 위패를 봉안한 조경묘도 있습니다.

 

 

▲향정(香亭) 

 

1872년(고종9년) 태조어진을 봉안할 때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향정은 왕가나 관청의 특정의례가 있을 때 용정이나 신연앞에 각종 의장물과 함께 위치하며, 길을 갈 때는 향정 담당관이 향을 피우게 했다고 하는데요, 다른 가마류와는 모양이 달라 위쪽의 옥형은 포작을 갖춘 팔작지붕 한옥의 형태를 갖추고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이 향정은 지붕의 절반과 몸채가 부서져 있던 것을 자료를 통해 복원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태조 어진과 함께 건립된 경기전의 역사가 올해로 600년을 맞았습니다. 올 11월 개관한 경기전 내의 어진박물관은  태조 어진을 보관하는 곳으로 해마다 한두 차례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라고합니다. 가마실에는 1872년 태조 어진을 봉안할 때 썼던 가마인 신연(神輦), 귀중품을 옮겨 싣는 데 쓰인 가마인 채여(彩輿), 조선시대 고관의 행차 때 사용했던 가마인 가교(駕轎) 등이 전시된다고 합니다.

지상 1층 어진실에는 태조의 어진과 새로 베껴 그린 여섯 임금(세종·영조·정조·철종·고종·순종)의 어진이 전시된다. 1872년에 모사된 태조의 어진은 전용 수장고에 보관하고, 1년에 1~2회 공개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지하에는 역사실·가마실·기획전시실 등이 들어서는데요,역사실은 태조 어진 봉안 이후 각종 유물을 보관해 온 경기전의 내력과 의례 등을 수록한 『경기전의(慶基殿儀)』, 1872년 태조 어진을 모사하는 과정을 기록한 『어진이모도감의궤(御眞移摸都監儀軌)』, 왕실의 번영을 기원했던 그림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 경기전 제례에 사용됐던 각종 제기(祭器) 등이 전시됩니다.

 

▲ 어진 박물관 내부.  ⓒ천지일보(뉴스천지)

위치: 전북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 3가 102 (경기전 경내)

관람시간: 9시~18시 (휴관은 매주 월요일, 1월1일)

관람료: 무료

 

전국 최초로 조선임금들의 어진을 전시하고 있는 어진박물관은 태조 어진을 모신 공간인 정전보다 규모를 작게 하여 위엄성을 존중한 반명 지하층의 공간을 크게 만들어 전시의 연출과 유물의 보관이 가능하도록 했으며 특히 태조 어진이 전시되는 공간은 경기전 정전의 침실과 똑같은 모형을 만들어 장엄하게 연출했다고 합니다.

 

단순한 초상화라 부르기엔 엄청난 힘이 담긴  어진 속에는 왕의 모습 그리고 왕의 정신까지 담겨져 그 숭고함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경기전을 배경으로 제작된 드라마 <바람의 화원> 극 중대사에서도   “주상전하를 그리는 것은 일반적 초상과는 다르다. 주상 전하는 만인의 위에 계시는 분으로 인간인 동시에 상징이다. 따라서 얼굴에는 시시각각 변하는 감정이 없어야 하고…좌우대칭이 정확한 것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임금에 은혜가 내린다는 뜻…이렇게 신령스러운 어진을 그릴 때는 그 모습을 터럭 한 올까지 그대로 옮기는 것이다.”라는 것 처럼 말입니다.

 

 


 

제2기 문화재청 대학생 블로그 기자단 장새롬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