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및 문학행사

[스크랩] 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 나병춘

윤여설 2009. 8. 3. 16:09

 

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 병 춘(시인)

 

1. 되돌이표 그 떨림과 살림의 계절

 

봄은 떨림의 계절

온갖 풀꽃 세상에 나타나

벌나비 춤추고

가만히 잠든 세상을 깨워놓는다

 

여름은 열림의 계절

너는 내 안에

나는 네 안에

한통속 되어 푸른 열매를 맺는다

 

가을은 울림의 계절

울긋불긋 옷을 집어던지고

알몸이 된다

황금물결 넘실대는 벌판이 된다

 

겨울은 살림의 계절

온갖 번뇌 설움 내 안에 갈무리하고

지극한 사랑으로 참회하는 계절

한밤내 함박눈 펑펑 내리고

새벽 굴뚝에선 생솔연기

꽃구름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졸시 「 사계」

 

시는 떨림입니다.

새로운 생명과의 새로운 사물과의 만남,

꽃과 나비의 만남처럼 끝없는 떨림을 노래합니다.

씨앗이 땅에 떨어졌을 때의 맨처음의 감정

딱딱한 돌밭에 떨어진 씨앗은 떨림이 작을 것이요

축축한 그늘에 떨어진 씨앗은 이내 문을 열고 싹을 열겠지요.

 

시는 열림입니다.

새로운 몸과 몸의 만남으로 사랑이 싹트는 것이겠지요.

'여름'이라는 계절의 어원은 무엇입니까?

'열다'라는 동사에서 왔습니다.

새로운 세계로의 열림

새로운 열매의 열림

뜨거운 태양 아래 알알이 익어가는 머루알 다래알의

싱싱함이 그 아릿한 향기가 느껴지는 계절이지요.

시는 그러한 생명의 열매를 지향합니다.

그러므로 시에서는 늘 천둥소리가 울리고 번개가 번쩍거립니다.

 

는 울림입니다.

감나무 잎사귀가 단풍지고 떨어지면

홍시감들이 댕댕 울리며 가을을 노래합니다.

홍시감이 떨어져 땅바닥을 울릴 때 땅바닥은 또 얼마나 아리하겠습니까?

모든 활엽수들이 잎사귀를 떨치고

우우 울고 있는 늦가을의 모습

나무들은 현악기가 되어 온 천지의 바람결과 하나 되어

세상의 음악을 탄주합니다.

온갖 번뇌 설움 다 비워내고

텅 빈 자리에 새로운 생명을 들어앉히는 새살림이 시작되지요.

 

시는 살림입니다.

헤어졌던 모든 살붙이들이 설날에는 함께 고향에 모이지요?

지난날을 돌이키며 회개하며 새로운 날을 준비하는 계절입니다.

흰눈이 펑펑 쏟아지면

그 하얀 이불 아래 모든 만물이 잠들어 꿈을 꾸는 시간이지요.

죽음의 시간이자 잉태의 시간입니다.

모든 것이 지나갔다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라는 말씀이 있지요?

겨울에 시간은 다시 되돌이표로 돌아옵니다.

 

그렇습니다.

시는 떨림 - 열림 - 울림 - 살림입니다.

봄 - 여름 -가을 - 겨울로 이어지는 계절처럼

유년 - 청년 - 장년 - 노년으로 이어지는 인생처럼

시에는 기- 승 - 전 - 결이 있습니다.

좋은 시는 이렇게 기,승,전,결이 잘 어울려 좋은 떨림과 울림을 주는 시

그 속에 지극한 열매가 달리고 깊은 철학이 담겨있어

인생을 되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2. 은유에 대하여

 

은유는 제 생각으론

우리는 원래 하나였는데

그 하나를 상실하여서

그 하나를 찾기 위해

시를 쓰고

하나님 부처님을 찾고

또 다른 뭔가를 추구하는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합니다.

시를 쓰는 행위는

하나인 '님'을 찾는 간절한 기도이지요.

그 깊은 추구가 시를 창조하는 그런 마음이겠지요.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그 태초의 말씀을 찾아가는 과정이

시를 찾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뭐 이런 생각!

그래서 종교와 시창작은 별개 문제가 아니라 생각하는 중이죠.

내 마음속의 은유 사물 속의 은유를 발견하고

그 은유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

즉 노랑부리저어새와 나와는 원래

하나라는 그런 생각으로 나는 살아가지요.

말이 길어졌군요.

 

은유나 직유를 학교에서 가르칠 때

문장 쓰는 기술로 가르쳐서

문제라고 생각이 됩니다.

은유 직유는 바로 하나님 나라로 가는 첩경이지요.

예수 석가모니 공자야말로

시인들 중의 가장 훌륭한 시인들이지요.

 

나도 그런 은유(Metaphor)가 되고 싶습니다.

 

사랑으로 선함으로 충만한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3. 상처에 대하여

 

상처가 나를 만든다

눈에 난 상처

가슴에 맺힌 상처

손가락에 낫자국으로 난 상처

 

그 상처의 기억들이

나를 오늘까지 이끌어온 수레다

사랑의 수레

미움의 수레

외로움의 수레

그리움의 수레를 끌고오느라

상처는 피투성이다

 

상처가 길을 만들고

상처가 강을 만들고

상처가 집을 만들고

상처가 처마를 둘렀다

 

상처가 섬을 만들었고

바다를 만들었고

푸른 지구 섬을 만들었다

태양으로부터 받은

달로부터 어둠으로부터 받은 상처들이

별이 되어 빛나고 있다

 

상처는 노래가 되고

춤이 되고

시가 되어

둥지를 틀고 있다

푸르르 하늘로 날아가는 상처들

 

상처가 어머니다

상처의 어머니 어머니의 어머니가

무지개 물방울 되어

땅에서 하늘로 다리를 놓았다

 

상처는 이 세상 만물의 조물주이다

―졸시「상처」

 

그렇습니다. 이 세상 만물은 '상처'라는 DNA로써 생사 윤회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나무와 풀에 꽃이 맺히는 것도 상처이고 벌나비가 날아들어 사랑을 나누는 것도 상처이며 꽃이 떨어져서 흙 속에 아무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도 또한 상처입니다. 꽃이 진 자리 영롱하게 보석처럼 반짝이는 붉은 열매도 하나의 상처이며 그것을 탐하는 까막까치들의 부리도 역시 상처입니다.

 

사랑도 상처이고 증오도 상처이며 백지에 쓰여지는 시 또한 상처의 기록입니다. 그리움과 외로움과 쓸쓸함의 바람결들, 봄 여름 가을 겨울로 이어지는 저 무상한 계절도 상처입니다. 떨림도 상처이며 울림 열림도 상처이며 살림 또한 상처입니다. 은유도 상처이며 상징도 상처이며 그 은유를 찾아 막장을 마다 않는 시인의 삽과 괭이 이마의 헤드랜턴도 역시나 상처입니다. 인간이나 자연이나 하늘이나 땅이나 모두가 상처로 하나입니다.

 

그래서 상처는 우리의 '님'이며 상처 가진 것들은 모두다 눈물을 갖고 있고 피를 갖고 있고 그 피돌기를 위하여 오늘, 지금 여기를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 윤회의 수레바퀴를 멈출 자 누구입니까? 생사 윤회를 끝장내고 니르바나의 세계로 가는 길은 어디입니까? 죽음입니까? 삶입니까? 삶과 죽음은 상처 안에서 하나입니다. 다만 현상에 보이는 것이 삶이요 죽음이지 그 본질은 다 그 안에 사랑으로 하나입니다. 즉 상처는 사랑이며 살이며 우리네 몸입니다. 우리 몸 속에 있는 상처의 자국들 그것이 우리를 시로써 고백하게 합니다.

 

그래서 시는 억지로 쓰여질 수 없습니다. 상처에 대하여 그 한없는 불면에 대하여 그 연민에 대하여 고백하기에 홀로일 수밖에 없습니다. 죽음과 삶의 경계를 넘나들기에, 산과 벌판의 다리를 수도 없이 넘나들기에 시인들은 장벽이 없습니다. 한없는 자유와 사랑의 지평을 넘기 위하여 시인은 오늘도 펜 하나 달랑 챙겨들고 자신을 기다리는 백지의 사막과 대면하는 지도 모릅니다. 끝없는 절망과 어둠에 한 자루 촛불을 태우는지도 모릅니다. 고요하게 바람에 흔들리며 어둠을 밝히는 시, 자신의 몸을 사루어 헌신하는 그 지극한 상처를 닮고 싶은 지도 모릅니다.

 

푸른산이 한 채 호수에 들어앉아 계시다

아니다 호수가 산을 밤새 껴안고 뒤척이는 것이다

이것을 보려고 앞니 빠진 달 하나가 빼꼼히 엿보고 있는 것이다

달이 풀어놓은 개구리 떼가 섬을 떠메고 먼 하늘로 이사가는 것이다

                              ―졸시「섬」

                                                                                                                  (우이시 제196호)

출처 : 자연과 시의 이웃들
글쓴이 : 운수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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