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및 문학행사

도리스 레싱, 노벨 문학상 그리고 … [중앙일보]

윤여설 2007. 10. 16. 20:59

그림:Doris lessing 20060312.jpg

 

# 10월 11일 오후 8시 직전

 노벨 문학상 수상자 발표가 임박한 시각. 공교롭게도 한국땅 안엔, 국적이 다른 유력 후보 셋이 있었다. 오후 4시 중국 작가 모옌이 한중 문학인대회 참석차 입국했고, 프랑스 작가 르 클레지오는 아예 석 달 전부터 서울에 살고 있었다. 그는 현재 이화여대에서 불문학 강좌를 맡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고은 시인. 올해도 언론은 경기도 안성 시인의 자택 앞에 진을 쳤고, 시인은 언론의 성화 때문인지 아침부터 집을 비웠다.

 올해도 조짐은 수상쩍었다. 먼저 영국 베팅업체 ‘레드브록스’가 고은 시인을 유력 후보로 점쳤고, 이어 주요 외신이 일제히 시인의 이름을 꺼내들었다. 『고은 전집』을 출간한 김영사는 올해도 “고은 시인이 유력하다는 첩보를 입수했다”고 몇몇 언론에 귀띔했고, 그 첩보의 출처는 올해도 공개되지 않았다. 한 지상파 방송이 스웨덴에 취재진을 보냈다는 소문도 들렸다.

# 10월 11일 오후 8시

 “도리스 레싱?”

 편집국에 비명이 터졌다. 안타깝게도 한림원이 공개한 이름은 올해 예상 후보군 중에 없었다. 모든 건, 그 시각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전문가 섭외, 번역작품 수배, 외신 검색 등의 작업이 말 그대로 부리나케 진행됐다. 이 시각, 전 세계 언론은 똑같은 소동을 치르고 있었다.

 더 황당했던 일은 런던에서 일어났다. 전 세계 어느 언론도 그 시각, 레싱을 찾아내지 못했다. 그는 쇼핑 중이었다! 두 시간쯤 뒤 사진 한 장이 들어왔다. 차에서 내리는 레싱이었다. 생뚱맞은 표정이었고, 엉거주춤한 자세였다. 이로써 적어도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해졌다. 정말로 한림원은 수상자에게 미리 통보를 안 한다!

 이후 외신이 폭주했다. 이 가운데 흥미로운 기사가 있었다. 레싱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죽은 사람에게 상을 줄 수는 없고 하니, 내가 죽기 전에 상을 주는 게 낫다고 생각한 것 같다”고 쓴소리를 했다. 그럴 만도 했다. 레싱은 올해 88세고, 1950∼6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다.

# 뒤풀이 혹은 뒷담화

 레싱의 국적은 영국이다. 레싱 덕분에 영국은 2000년대 들어 세 명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나라가 됐다(2001년 비디아다르 나이폴, 2005년 해럴드 핀터).

 아니나 다를까. 11일 이후 미국 언론의 보도에선 마뜩찮은 속내가 읽혔다. 미국의 문학평론가 해럴드 블룸은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전적으로 정치적인 판단(pure politics correctness)”이라며 “최근 15년간 레싱의 작품은 읽을 게 못 됐다(unreadable)”고 힐난했다. “4등급(fourth-rate)”이란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미국의 주요 언론은 블룸의 발언을 즉각 받아적었다. 그럴 수밖에. 93년 토니 모리슨의 수상 이후 미국은 여태 노벨 문학상을 안아보지 못 했다. 올해 유독 미국 작가 필립 로스의 수상 가능성이 높았던 건 이와 무관치 않다.

 미국 일간지 ‘팔 비치 포스트’는 “죽음을 앞둔 작가에게 준 공로상”이라고 올해 선정 결과를 꼬집었다. 전혀 뜬금없는 비난은 아니다. 레싱이 ‘앵그리 영 맨(Angry young man)’이었던 건 꼬박 반세기 전이다.

 올해도 노벨상은 한국을 비켜갔다. 그렇다고 한림원의 선택을 깎아내릴 생각은 없다. 노벨상을 받고서 “그런데 제가 기뻐해야 하나요?”라고 되물을 수 있는 이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손민호 기자의 문학터치

                                                 (중앙일보에서 옮겨 옮 )                                                    

 

 

 

                                                               나의 홈페지

                                                      클릭http://poet.or.kr/yo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