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및 문학행사

미당·황순원 문학상최종 후보작 지상중계 1 ~6

윤여설 2007. 8. 10. 15:34
미당·황순원 문학상최종 후보작 지상중계 ① [중앙일보]
제7회 미당문학상과 황순원문학상의 최종심 후보작 지상 중계를 시작합니다. 시인과 소설가가 들려주는 자신의 작품 이야기, 예심 심사위원의 해설 등을 모아 모두 10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올해는 누가 국내 최대 규모의 문학상을 차지할지 관심을 갖고 지켜봐 주십시오. 연재 순서는 시인·소설가 이름의 가나다순입니다. 



아마도 고형렬 시인은 2006년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이 한 해 동안 그는 문학상 세 개를 잇달아 받았다. 개중엔 백석문학상도 있었다. 시인이 20년 동안 시집을 만들었던 곳이 상의 주체였다. 창비, 그래 시인은 창비에서 청춘을 보냈고 이태 전 창비를 나왔다.

비로소 백석문학상을 받던 날, 시인은 “평생 무상(無賞) 시인이 되지 못하고 이 상을 받는다. 모든 시인들에게 고개 숙인다”고 남다른 수상소감을 말했다. 고형렬은 유독 상복이 없는 시인이었다.

또 여름이 왔다. 올해도 고형렬이란 이름은 미당문학상 최종심 후보 명단에 올랐다. 그는 해마다 유력 후보로 언급됐고 해마다 떨어졌다. “해마다 죄송합니다”며 말문을 열었더니 “이렇게라도 얼굴 보니 좋잖아”라며 느긋이 웃는다. 늘 이런 식이다.

올해 추천작으로 예심위원이 1차 선정한 결과를 시인은 흡족해 했다. ‘조금 비켜주시지 않겠습니까 - 달개비의 사생활 2’를 시인은 “쓰고 나서 기분이 좋았던 시”라고 소개했다.

우선 달개비란 식물을 알아보자. 달개비는 습지에 사는 한해살이풀이다. 이맘때 비취색 꽃을 피우고, 잎은 길쭉하다 못해 가느다랗다. 잎사귀 폭이 2㎝ 정도에 불과하다. 눈 밝은 시인은 고운 때깔의 꽃잎이 아니라 볼품없는 잎사귀에 눈길을 매어두었다. ‘아무리 수많은 햇살이 하늘에서 쏟아지고 있어도/내게 필요한 면적은 다만 나의 잎사귀 형상뿐’라고 읊을 수 있었던 건 오랜 관찰 끝에 깊은 공감을 얻어냈기 때문이었다.

지난해 시인은 작고 미세한 것에 대해 유별난 관심을 보였다. 미토콘드리아 따위의 세포 구성물을 시인은 시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거기에서 시인은 존재 안의 무엇, 그러니까 존재를 구성하는 또 다른 존재를 궁리했다.

올해는 지난해와 또 달라 보인다. 자연을 말하는 시편이 자주 눈에 띈다. 그러나 내용은 사뭇 철학적이고 불교적이다. 문태준 예심위원의 말마따나 “무량한 바깥 세계를 인식하는 건 자신의 감각을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달개비에게 빛은, 가느다란 잎사귀를 온전히 덮을 정도면 족하다. 더 이상의 햇빛은 달개비와 무관한 세상이다. 이 대목에서 체념의 정조가 읽힌다. 자신이 처한 바를 깨닫고 자신의 몫만 감당하려는 자의 결의 말이다.

“이 작품은 ‘조금’의 시학을 말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행 ‘잠깐 여보세요, 조금만 비켜주시지 않겠습니까’에서 ‘조금만’이 품는 뜻은 결코 조금에 그치지 않습니다. 조그맣게 들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겠다는 의지이며 당신을 의식하며 살겠다는 배려의 마음입니다.”

시인은 영 무심한 표정이었다. 삶의 보잘 것 없음을 진작에 알아버린 것인지, 세속의 온갖 욕심을 내려놓기로 작정한 것인지 알 길은 없었다. 다만 ‘조금’ 짐작할 따름이었다. 

글=손민호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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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 황순원 문학상 최종 후보작 지상중계 ② [중앙일보]



걱정스러울 만큼 뛰어난 재능의 신예
수백 년 된 화석에서 어미의 울음 듣다


최근 2년간 한국 시단엔 벼락과 같은 축복이 내려졌다. 황병승과 김경주. 이 둘의 등장은, 21세기 한국시의 진정한 스타트 라인으로 기록될 법한 일종의 사건이다. 이 둘의 존재는 21세기 한국시가 개척한 신 영토를 고스란히 가리킨다.

2005년이 황병승의 해였다면 2006년은 김경주의 해였다. 황병승이 21세기 들머리 소위 ‘미래파’ 논쟁을 촉발했다면, 김경주는 난해하기 그지없는 요즘 젊은 시의 영역을 한 뼘 더(혹은 더 그 이상) 넓혔다는 평을 듣는다. 황병승(1970년생)은 지난해 미당문학상 최종심에서 최연소 후보였고, 76년생 김경주는 올해 미당문학상 후보 가운데 최연소를 차지했다. 미당문학상이 팔팔 끓는 한국 시의 현장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이 두 시인은 몸소 증명한다.

앞서 인용한 ‘주저흔’은 시인이 고른 추천작이다. “다소 어렵더라도 ‘주저흔’을 실어달라”고 시인은 말했다. 작품은, 김경주 특유의 서정과 시학 나아가 김경주의 특징을 한껏 드러내고 있다.

시인은 살아있는 모든 것의 울음소리는 다르다고 믿는다. 이미 그는 ‘멸종하고 있다는 것은 어떤 종의 울음소리가 사라져간다는 것이다 나는 멸종하지 않을 것이다’(‘우주로 날아가는 방 5’부분)라고 첫 시집에서 쓴 적 있다. 이번에 시인은 그 울음소리의 기원을 추적한다. 수백 년의 기억을 거슬러 올라간 끝에 시인은 추적의 결과를 타이핑한다. ‘바람은 죽으려 한 적이 있다’.

울음소리와 바람소리의 이미지가 묘하게 겹쳐지고, 그 위에 주저흔(Hesitation marks, 자살하기 직전 머뭇거린 흔적)’의 이미지가 다시 포개진다. 똑 떨어지게 설명할 순 없어도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다. 수백 년의 역사를 품고 있지만 결국 시인이 귀속되는 건 ‘똑같은 울음소리를 가진’ 어미다. 문법을 어기고 맞춤법을 무시하는 시적 전략이 드러나지만 시를 지배하는 정서는 삶을 향한 어떠한 절실함이다. 깊은 사색의 흔적이 느껴지면서도 ‘바람은 죽으려 한 적이 있다’와 같은 표현은 입안을 달콤하게 감돈다. 이광호 예심위원이 “요즘 젊은 시인의 시 중에서 가장 음역이 넓다”고 지적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 마디로 정리해서 김경주는, 한 마디로 정리하기 힘든 시인이다.

김경주는 “걱정스러울 정도로 뛰어난 시적 재능”(2005년 대산창작기금 수상자로 선정됐을 때)이란 찬사를 들으며 문단에 나타났다. 첫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는 “한국어로 씌어진 가장 중요한 시집 가운데 한 권이 될 것이다”(비평가 권혁웅)란 화려한 표사를 달고 나왔다.

그리고 1년 뒤, 김경주의 첫 시집은 이례적으로 1만 부가 넘게 팔렸다. ‘시집 1만 부 판매’보다 훨씬 이례적인 기록인 ‘시집 10쇄 인쇄’도 연내 가능할 것이란 예상이다. 21세기 벽두, 김경주는 존재만으로 하나의 사건인 시인이다.


글=손민호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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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 황순원 문학상 최종 후보작 지상중계 ③ [중앙일보]



구순 노모 향한 예순 아들의 안쓰러운 노래
한결 촉촉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들려줘


“작년엔 선친 얘기가 자주 보이더니 이번엔 모친 얘기가 많네요.”

“허허허…, 그렇지. 일이 좀 있었네.”
 
“일… 이라면?”
 
“글쎄, 그걸 알려줘야 자네도 기사를 쓸 수 있겠네만, 집안 일이라서….”
 
“해마다 죄송합니다.”
 
“아닐세. 난 그저 부끄러울 뿐이네.”
 
올해도 통화는 이렇게 끝났다. 해마다 미당문학상 최종심에 올랐던 김명인 시인은 올해도 “부끄럽다”며 정중히 인터뷰를 거절했다. 그래도 성과가 아주 없었던 건 아니다. 시인은 어머니 얘기를 슬쩍 비쳤다. 그것으로 족하다. 올 한 해 김명인의 시편은 어머니를 향해 놓여져 있다.

시인은 지난해 7월부터 올 6월까지 모두 22편의 시를 발표했다. 이 중에서 어머니가 직접 등장하는 시편이 여섯 수다. 지난해 회갑을 맞아 내놓은 첫 산문집 『소금 바다로 가다』에서 시인은 “시력(詩歷) 30여 년 동안 어머니를 두고 쓴 시가 몇 편 있다”고 적었다. 그 몇 편이 1년 만에 십수 편으로 늘어났다.

시인이 이른 “집안일”은 여섯 편의 ‘어머니 시’에서 얼추 짐작할 수 있다. 시편에 미뤄 보건대, 당신의 건강이 부쩍 안 좋아지신 게다. 요즘의 당신은 덜컥, 정신을 내려놓거나 하시는 모양이다.

‘이을 듯 끊을 듯 되살아난 어머니의 기억이 불쑥/말씀하신다, 대추나무 밑에 세워둔 도끼 어딨노?’(‘도끼자루’부분)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친 구순 노모를/예순 아들이 안고 목욕시켜드린다/…/다라이 속에 뜬 구름 겨우 한 조각인데/고무튜브인 양 그걸 붙잡고 엄마, 엄마’(‘다라이 타고 나르는 구름’부분)

시인은 구순을 훌쩍 넘긴 어머니를 모시고 산다. 십여 년 전 타계한 선친은 “고기잡이는 고사하고 농사일도 못 해서 반평생을 무위도식한 가장”(앞의 책)이었다. 열 남매의 생계는 오롯이 어머니가 감당했다. 그 어머니가 이제 또 어디론가 날아갈 채비를 하고 계시다. 하여 아들은 묵묵히 준비를 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러고 보니 올해 작품에서 죽음이 연상되는 시편이 여럿 눈에 띈다. 여태의 김명인 시에서 죽음의 이미지가 두드러졌던 것 또한 사실이지만 이번엔 느낌이 다르다. 올해 그의 시편엔 유독 “물기가 많아졌다”(김춘식 예심위원).

서른다섯 해 시를 쓰면서 틈 따위는 좀체 안 보였던 시인이다. 하나 이제는 예전의 뻑뻑한 느낌이 아니다. 지난해 선친의 기억을 길어올린 몇 편의 시에서도 시인은 예의 팽팽했던 명주실을 슬쩍 풀어놓은 인상이었다. 느슨해졌다는 얘기가 아니다. 사람들 앞으로 걸어나온 것 같아 반갑다는 얘기다.


손민호 기자

미당·황순원 문학상 최종 후보작 지상중계 ④ [중앙일보]



서해안 갯마을에 들어앉은 ‘떠돌이 시인’
어지러운 갯벌 물길에서 고단한 삶을 보다


김신용 시인은 지난해 또 처소를 옮겼다. 충북 내륙의 산골마을 ‘도장골’로 들어갔던 게 2005년. 그는 한 해 만에 산에서 내려왔고, 올 봄 산골에서 생산한 시편을 모아 시집 『도장골 시편』을 묶었다. 산골에서 나온 시인은 서해안 갯마을에 이르러서야 몇 안 되는 세간을 풀었다. 소래 포구로 불리는 곳, 경기도 안산의 ‘섬말’이다.

시인이 자꾸 처소를 옮기는 건 빈집을 찾아내야 했기 때문이다. 마땅한 벌이가 없는 시인에게 집세는 적지 않은 부담이었다. 시인이 갯골에 들어앉을 수 있던 것도, 시인의 인척이 창고로 쓰던 곳이 마침 비어있어서였다. 그렇게만 알고 있었다. 하나 시인은 달리 말했다.

“한 곳에만 있으면 좀이 쑤셔.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에 마량포구 근처에 빈집이 났다고 해서 둘러보고 왔어요. 평생을 떠돌던 몸이잖아. 떠돈다는 거, 기질인가 봐.”

그랬다. 김신용은 ‘지게꾼 시인’이 아니었다. 그가 지게 하나에 생계를 의존했던 시간은 겨우 십수 년이었다. 열네 살 나이에 집을 나온 뒤로 그는 세월의 대부분을 부랑(浮浪)했다. 단언컨대 김신용은, 한국 현대시사에서 가장 많은 처소를 거치고 또 보유했던 ‘떠돌이 시인’이었다.

시인의 떠돌이 근성을 이해하고 나서야 모든 게 환해졌다. 시인은 생의 대목마다 자신이 처했던 바를 시로 옮겨 적었던 것이다. ‘버려진 사람’이었던 시절엔 그 ‘개 같은 날들’을 무연히 기록했고 ‘도장골’에 들어가서는 민달팽이·다람쥐·청개구리와 더불어 살았던 나날을 시에다 꾹꾹 쟁였다. 갯골에 몸을 담근 지 1년, 이윽고 시인은 ‘섬말 시편’이란 이름으로 시를 내놓기 시작했다. 지난 한 해 시인이 발표한 23편의 시 중에서 ‘섬말 시편’ 연작은 5편. 모두 올 봄 이후 산(産)이다. 당분간 시인은 ‘섬말 시편’에 머무를 작정이다.

하나 시인의 처소가 바뀐다 하여 시인의 정서가, 다시 말해 고단했던 삶의 내력조차 바뀌는 건 아니다. 시인이 거처하는 소래 포구는 세계에서 가장 큰 사행성(蛇行性) 갯벌이다. 도시 구획하듯이 큼직한 물길이 뻥뻥 뚫려있는 게 아니라, 뱀이 기어간 뒤처럼 종잡을 수 없는 숱한 물길이 촘촘히 그어진 갯벌이다. 시인은 그 뒤틀리고 휘어진 물길을 바라보며 굴곡 심했던 지난날의 기억을 되새기고, 채 내려놓지 안은 삶에 대한 애착을 드러낸다.

‘아물지 않는 손톱자국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오랜 세월, 뒤틀리고 휘어진 그 사행(蛇行)의 갯골에는/아직 새 날아온다 뭇 새들 갈대밭에 집 짓는다’
 
김신용의 바다는 여느 바다와 다르다. 그의 바다는 풍요롭지 못하다. “뭇 생명이 뛰어노는 바다가 아니라 말라가는 이미지의 바다”(최현식 예심위원)다. 그건 시인에게 허한 구석이 있어서다, 아직도.
 

글=손민호 기자, 사진=양영석 인턴기자

 

미당·황순원 문학상 최종 후보작 지상중계 ⑤ [중앙일보]


평범한 단어만으로 이룬 가장 어려운 시
첨예한 감각이 표현하는 ‘느낌’의 세계


시인이 가장 싫어하는 말이지만 어쩔 수 없다. 김행숙은 어렵다. 올해 미당문학상 최종 후보 열 명 중에서 가장 어렵고, 당대 한국 시단을 통틀어서도 가장 난해한 시인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러나 시인은 정작 “억울하다”고 항변한다. 시인이 들려준 일화 한 토막이다.

“등단하자마자 시 몇 편을 발표했어요. 어느 평론가가 비평을 했는데 전체 맥락은 호의적이었어요. 그런데 ‘김행숙은 어렵지만 어쩌고…’ 하는 대목이 있었어요. 그걸 보고 꼬박 사흘을 울었어요.”
 
“왜요?”
 
“벽이…, 너무 강고한 벽이 내 앞을 가로막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김행숙의 시는 어렵지만, 시어 자체는 어렵지 않다. 사전에서나 봤음직한 희귀 어휘를 찾아내지도 않고 신조어 따위는 만들어낼 생각도 없다. 매니어만이 해독 가능한 은어도 구사하지 않으며 비어나 욕설 따위를 동원하지도 않는다.

앞서 적은 ‘눈사람’ 역시 그러하다. 시인은 초등학생 수준의 단어만으로 한 편의 시를 완성했다. 그러나 해석은 결코 간단치 않다. 예컨대 ‘눈사람이 작아졌다! 엄마가 죽었다.’란 시구를 보자. ‘눈사람이 작아졌다’란 사건과 ‘엄마가 죽었다’란 사건이 병렬 배치됐다. 그러면 두 사건 사이에 인과 관계가 동반해야 아구가 맞는다. 설명이 없으면 암시라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두 사건은 그저 나란히 놓여있을 뿐이다. 무엇보다 마지막 두 행! 도대체 어떻게 시장을 가야 ‘사소하게 시장을 가는’ 것인가.
 
김행숙이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어와 시어가 만나는 자리, 시어와 시어가 이루는 문장의 의미가 뭇 정서와 거리가 있다. 그렇다고 난해한 시를 생산하는 여느 젊은 시인처럼 나름의 계산에 따라 모종의 실험을 도모하는 건 또 아니다. 차라리 그렇다면, 예측 가능한 구석이 있다. 그러나 김행숙은 어떠한 예측도 차단한다. 자신의 느낌을 느낀 대로 말하고 있어서이다. 이쯤에서 시인의 작품설명을 듣는다.

“점점 작아지는 눈사람, 녹는 것, 사라지는 것에 대한 느낌을 적고 싶었어요. 거의 안 보이는 나, 우리의 희미한 존재감 같은 것에 대한 느낌과도 통하지요.”
 
이제야 김행숙을 이해하기 위한 단서가 정체를 드러냈다. 느낌이다. 점점 녹아서 결국엔 사라지는 눈사람에 대한 느낌을 시인은 아이가 어른이 되는 과정에 빗대어 표현했다. 녹기 전의 눈사람은 그래서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눈사람이 작아지자 엄마가 죽는 것이다. 그걸 깨닫는 건 이미 사소한 존재가 돼버린 어른으로서의 우리이고.
 
이광호 예심위원은 “김행숙은 비유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 주어를 대체하는 화법의 시인”이라고 설명한다. 맞는 말이다. 김행숙은 예쁘게 화장하거나 정성껏 포장하지 않는다. 심드렁하게, 느낌을 툭툭 던질 따름이다. 하여 김행숙의 시는 비쩍 말라 있다. 평이한 단어만 즐비한 것도 이 때문이다.

김행숙은 오늘 우리 시단에서 가장 첨예한 감각(또는 느낌)을 지닌 시인이다. 다시 말해 당대 한국 시의 한 첨단이다. 하니 “모르겠다”고 낙담할 일은 아니다. 그러고 보면 김행숙도 억울할 법하다. 어찌 타인의 느낌을 온전히 공감할 수 있느냔 말이다.


글=손민호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미당·황순원 문학상 최종 후보작 지상중계 ⑥ [중앙일보]


세상 먼저 뜬 큰 누님, 오랜 친구
“인생이 있긴 있나” 시인의 번뇌


유난히 고단했나 보다. 문인수 시인에게 지난 1년은, 험하고 힘겨웠나 보다. 시인이 한 해를 보내며 내려놓은 시편을 따라 읽는 일은, 당신의 아픈 기억을 들추는 것처럼 가슴 시렸다.

지난해만 해도 이렇지 않았다. 시인은 예의 날카로운 언어로 얄팍한 세상살이를 꾸짖었고, 삶의 생생한 기운을 능청스레 노래했다. 환갑 넘은 나이는 문인수란 시인과 도무지 어울리지 않았다.

하나 올해의 시편은 어둡다. 우울하고 슬프다. 시인은 한 해 동안 42편의 시를 생산했다. 이 가운데 한겨울 섬진강변에서 지켜본 되새 때의 모습을 분 단위로 묘사한 ‘새떼’ 연작이 10편이다. 이 열 편을 제외한 32편 중에서 죽음이 직접 등장하는 시가 12편이다. 나머지 20편에서도 상실의 정조가, 그에 따른 허망한 심사가 새벽 안개처럼 잔뜩 드리워져 있다.

어찌 보면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한다. 올 초 시인은 오랜 친구를 잃었다. 고(故) 박찬 시인이다. 친구의 갑작스런 죽음을 지켜보며 시인은 세 편의 시를 썼다. 앞세운 친구를 애도하는 마음보다, 어찌하다 남아버린 친구의 비애가 되레 도드라진다.

‘도대체, 인생이 어디 있나, 있긴 있었나 싶을 때가 있다./나 허물어지는 중에 장난치듯/한 죽음이 오히려 생생할 때 그렇다.’(‘오후 다섯 시-고, 박찬 시인 영전에’ 부분)

시인의 주변에서 죽음은 또 있었다. 지난해 시인의 큰 누님이 돌아갔다. 한데 아흔여섯 연세의 어머니는 여전히 곁에 계신다. 이 난감한 상황이 안타까운 시 한 편을 또 낳았다.

‘큰 누님 저 세상 갔다./향년 76세, 삼일장을 치른 뒤 우리 남매 어머니한테 갔다./활짝 반기면서 어머니는 대뜸,/하필 내게 물었다./“느그 큰 누부는 안 오나……?”(약속대로 우리는)나는, 딴청을 피며 어물쩍 넘겼다./…/큰 누님 안부, 다시는 한 번도 잠잠 묻지 않는다.’(‘뻐꾸기소리’부분)

시인의 형제는 당신의 자식이 먼저 간 일을 알리지 않았다. 혹여 노모가 쓰러지실까 저어한 때문이었다. 어찌 된 일인지, 당신은 딱 한 번만 첫째 안부를 물으시곤 다시는 첫째를 찾지 않았다.

시인은 “당신께서 알고 계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형제 중에서 가장 자주 얼굴 보이던 첫째가 어느 날부터 나타나지 않는 걸 보고, 다른 자식들이 애써 무언가 감추는 걸 알고 당신께선 이내 받아들이셨던 게다. 꾹꾹 삼키고, 또 삭히셨던 게다.

문태준 예심위원은 “시인의 심정을 드러내는 시어라면 아마도 ‘소실점’일 것”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그 ‘소실점’이 앞서 옮긴 시편에서도 보인다. ‘새 길게 날아가 찍은 겨자씨만한 소실점, 서쪽을 찌르며 까무룩 묻혀버린 허공처럼/하루가 갔다.’라고 시인은 적었다. 시인은 자꾸, 먼 허공만 바라보고 있다.

다음번 시인을 만날 땐 예전의 그 얼굴로 돌아가 있기를, 혼자서 빈다. 목이 메어 혼났다.


글=손민호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중앙일보에서 가져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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