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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가짜라고 국보 해제된 용문산 상원사 범종, 신라시대 작품으로 명예회복할 듯

윤여설 2015. 11. 7. 19:23

가짜라고 국보 해제된 용문산 상원사 범종,

신라시대 작품으로 명예회복할 듯

KIST 재료 성분 분석

 

 

 용문산 상원사 범종의 비천 문양.

선녀(왼쪽)가 당나라 시대의 비파를 연주하고 있고,

비천상 위쪽에는 염주 목걸이(瓔珞)와 천의(天衣)가 휘날리고 있다.

이런 특징은 신라시대의 종에서만 보인다.

 

'가짜' 오명을 쓰고 국보에서 탈락했던 비운의 경기도 양평군 용문산 상원사 범종(해제 당시 국보 367호)이 신라시대에 제작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과학적인 연구 결과가 나왔다.

 

범종의 납 동위원소 비율이 남한에서 생산된 종 재료와 거의 일치한다. 일본이나 중국산과는 거리가 멀다.

한국과학기술원(KIST) 전통과학기술사업단 도정만 박사팀은 15일 상원사 범종은 신라시대 범종 제작 기법인 밀납(蜜蠟) 주조공법을 사용했고, 재료도 신라시대 남쪽지방 것을 사용한 것으로 분석됐다고 밝혔다.

 

재료 성분분석을 통해 범종이 일본에서 제작됐다는 일부 학자의 주장을 뒤집은 것은 처음이다.


 


 

이날 경기도 양평 농업박물관에서 열린 '용문산 상원사 범종 학술발표회'에서 도 박사는 "종 재료에 섞인 납의 세 가지 동위원소 비율을 분석해 보니 남부지방 재료를 사용했으며, 구리·주석·납의 구성 비율이 성덕대왕신종 등 신라시대 종과 유사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재료 비율을 보면 한반도 남쪽과 북쪽, 중국 남부와 북부, 일본 등 원산지를 알 수 있다"고 밝혔다. 그동안 한국과 일본의 고고학자들은 상원사 범종의 제작 연대와 모조품 여부를 문양이나 당시 상황 등으로 판단했었다.

도 박사는 "제작 기법도 온전하게 남아 있는 신라시대 범종인 오대산 상원사 범종(725년), 성덕대왕신종(771년)처럼 당시 범종에 주로 사용했던 밀납 주조공법이 적용됐다"며 "거푸집 위에서 용융 청동을 부어 넣는 방법도 신라시대 범종 제작 기법과 같았다"고 말했다. 그는 "용문산 범종 표면의 비천상의 선녀가 당나라 시대의 4현 비파를 연주하고 있는 것도 제작 연대를 신라시대로 추정하는 근거"라고 주장했다.



 

범종을 살펴보고 있는 도정만 박사(오른쪽)와 상원사 호산 주지 스님 

 

 

상원사 범종은 1929년 2월 1일 우리나라 최초의 '제야의 종' 타종에 사용되었으며 국가가 39년 11월 17일 보물로, 해방과 함께 국보 367호로 지정했다.

 

그러다 가짜 불명예를 안게 된 것은 옛 문교부 문화재위원회 위원이었던 한 사학자가 62년 노인들의 증언, 문양 등을 근거로 '일본이 약탈해 간 뒤 19세기 말 일본에서 급조해 다시 들여온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 발단이 됐다. 그해 12월 12일 문화재위원회에서 그 주장을 받아들여 국보 지정을 해제했다.

그 후 여러 사찰을 떠돌다 2010년 1월 15일 상원사로 귀환했다. 이에 대해 문화재청은 "학계에서 연구가 활발히 진행돼 문화재 지정신청이 들어오면 검토를 거쳐 국보 지정 등 관련 절차를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일보/박방주 과학전문기자 2012.5.16>

 

 

용문산 상원사종은 국내서 밀납법으로 주조된 신라종

 

과학으로 푼 용문산 상원사 범종…학술연구 첫 성과

 

 

 

높이 156.5㎝, 구경 89㎝, 종 입구 두께 6.1㎝의 상원사종

 1945년 국보 367호로 지정됐다가 62년 지정이 해제됐다.

한국종의 원형으로 불리는 성덕대왕신종이나 ‘오대산 상원사’ 종과는 달리 그 모양이 독특하다.

일본·중국종 양식인 쌍룡의 용뉴와 ‘가사거(袈裟渠)’ 형식의 줄무늬 문양과 함께

통일 신라 종의 특징인 주악비천상이 함께 그려져 있는 특이한 형태의 종이다.

 

 

 

경기 양평 용문산 상원사 범종은 사연이 많다. 오대산 상원사 종과는 다른 종이다

일제강점기와 근현대 세월을 견디고 103년 만인 2010년 1월 15일 제 자리로 돌아왔다. 용문산 상원사 종은 ‘전상원사종’, ‘조계사종’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이제 제 자리로 돌아왔으니 ‘용문산 상원사 종(이하 상원사 종)’으로 불리는 게 맞겠다.

상원사 종이 제 자리로 돌아오기 직전에는 서울 조계사에 모셔졌다. 경기도 양평 용문산에 있던 종이 어떤 연유에서 서울 조계사까지 흘러갔을까.


돈에 팔리고 왜색불교 총본산지에 모셔진 비운의 종

일제강점기인 1907년 일본군은 독립군을 토벌을 빌미로 상원사를 불태웠다. 당시 상원사에 모셔진 범종은 1908년 4월 서울 남산의 동본원사(東本願寺 : 히가시혼간지) 경성별원으로 이송됐다. 일본불교인 진언종 대곡파 동본원사 경성별원은 을사늑약으로 국권을 빼앗겼던 고종황제가 황태자(순종)와 함께 이토 히로부미의 강청을 뿌리치지 못해 할 수 없이 내 놓은 하사금으로 지은 법당이다.

일본불교 진언종이 경희궁의 건물을 뜯어다가 세운 일본 불교 진언종의 조선 총본산지다.

상원사 종은 이곳에 있었다. 상원사 종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제야의 종’ 타종에 이용하면서다. 1928년 경성방송국이 새해맞이 행사로 타종행사를 방송했고, 이듬해인 1929년 1월 1일 동본원사 경성별원에 모셔진 상원사 종을 모셔와 본격적인 새해 타종 행사에 이용됐다.

상원사 종은 원래 있던 곳에서 팔려나간 것으로 전해진다.

이구열 한국근대미술연구소 소장이 1996년 발간한 <한국문화재 수난사>에는 “신축사원(동본원사)에서는 옛날부터 일본인들이 항상 탐냈던 신비로운 음색과 아름다운 형태의 한국 종(鐘)을 찾아내 가져올 홍계를 꾸렸다…’경기도 양평의 용문산 쪽에 있는 작은 절터에, 순금을 3할 이상이나 함유하고 있고 종소리는 실로 신묘한 아주 오래된 대종(大鐘) 하나가 있다’”며 “남산본원사측 기록을 보면 그때 야마구치를 통해 종 값으로 지불된 돈은 8백원”이라고 적고 있다.


황수영 박사 “본래 상원사종 일본 반출 주장…국보 해제”

조선총독부는 1939년 11월 17일 제5회 국보고적명승천연기념물 보존회 총회에서 상원사 종을 ‘통일신라 말 또는 고려 초의 유물’로 결론짓고 보물로 지정했다. 이후 해방과 동시에 동본원사가 불타면서 1945년 조계사로 옮겨졌다. 1945년 광복 후 상원사 종은 국보 367호로 지정됐다가 1962년 황수영 박사의 ‘위종설’이 받아들여지면서 같은 해 12월 12일 문화재위원회는 상원사 종을 국보에서 해제했다.

하지만 국보 해제 과정에서 학술조사는 없었다. 주로 황수영 박사의 “본래의 상원사 종은 일본으로 반출됐거나 없어졌으며, 현재의 조계사 범종은 가짜다”라는 주장이 받아들여 졌을 뿐이다. 일제에 의해 제 자리를 잃었고, 국보 지정도 해제된 비운의 종으로, 우리 학자들에게서도 외면의 대상이었다. 

상원사 종은 양식적인 면에서도 독특하다. 높이 156.5㎝, 구경 89.0㎝, 종입구 두께가 6.1㎝이다.

한국종의 원형으로 불리는 성덕대왕신종이나 ‘오대산 상원사’ 종과는 달리 그 모양이 독특하다. 일본·중국종 양식인 쌍룡의 용뉴와 ‘가사거(袈裟渠)’ 형식의 줄무늬 문양과 함께 통일 신라 종의 특징인 주악비천상이 함께 그려져 있는 특이한 형태의 종으로 아름다움과 학술적 가치가 높게 평가된다.

남천우 교수 “7세기 중엽까지 올라가는 신라종의 근원” 주장

남천우 서울대 교수는 1972년 “상원사 종이 우리나라 범종형식의 변천 또는 발생과정에서 제조된 매우 귀중하고 우수한 유품으로 제작연대가 7세기 중엽까지 올라가는 신라종의 근원이 되는 한국종이며, 국보로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천우 박사 말대로라면 용문산 상원사 종은 한국종 가운데 가장 오래된 종으로 평가될 수 있어 역사를 뒤바꿀만한 사건이 된다.

상원사 종이 위작이 아니라는 주장은 일본인 학자 삼산양(衫山洋) 씨가 1998년 일본 나라국립문화재연구소 국제학술 세미나에서 상원사 종(당시 조계사종)이 결코 위작이 아니라는 새로운 사실을 발표했다.

그는 “범종의 용두 모양은 처음 주조됐을 당시 모습이 아니라 후대에 보수됐다”고 주장했다. 상원사 종이 적어도 근세에 제작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한다는 것이다. “용두를 보수했다는 것은 이 종이 오랜 세월을 견뎌왔다는 것을 반증하는 대목”이라게 삼산양 씨의 주장이다.

상원사 종은 제작연대와 출처에 대한 이견이 여전히 분분하다. 하지만 역사·학술적으로 중요한 문화재라는 것에는 많은 학자들이 동의한다. 상원사 종은 폭넓은 연구와 문화재 지정 보호 가치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범종을 조사한 국립중앙박물관 최응천 학예연구관은 “범종은 12세기에 조성된 일본 고야사 종과 비슷한 양식”이라며 “송대에 만들어진 전등사 종이 보물로 지정돼 보호받듯이 설령 범종이 일본에서 만들어진 것이라 해도 지정문화재가 될 가치가 충분하다”고 재평가했다.

용문산 상원사, 제 자리 찾은 범종 학술연구 첫 성과

하지만 그동안 상원사 종에 대한 세밀한 학술연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에 용문산 상원사가 범종학술조사위원회(회장 호산 스님, 용문사 주지)를 구성하고 아세아불교문화연구원(원장 이기선)과 공동으로 ‘상원사 종’의 역사적 가치에 대한 연구에 들어갔다.

 

범종학술조사위원회는 15일 양평 용문사 입구 농업박물관 세미나실에서 상원사 종에 대한 첫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과학으로 본 상원사 범종’이다. 출처와 역사적 가치 조명에 앞서 과학적 기법을 동원해 상원사 종의 음향과 금속학 연구를 진행했다.

‘상원사 범종의 음향분석’은 김석현 강원대 교수가 맡아 진행했다. 김 교수는 지난해 9월 상원사 종을 타종해 얻은 소리와 진동 등 데이터를 취득해 분석했다. 그는 △종 기존사양 측정 △당좌 타종시 종소리·진동의 방향별 측정 △소리 시간 신호 디지털 레코더 녹음 및 오디오 파일 제작 △타격 위치 변화에 따른 맥놀리 파형 녹음 등 현장 측정조사와 △타종음 주파수 스펙트럼 △고유진동수 분석 △진동 모드 분석 △맥놀이 주기 분석 △소리·진동파형 시간에 따른 감쇠 특석 분석 등 실험실 후작업을 통해 결과를 도출했다.


김석현 교수 “진동 오래 지속…맥놀이 맑고 뚜렷, 신라종과 유사”

김 교수는 상원사 종의 외형적 특성은 “한국 범종의 종신고·구경비는 1.14~1.48 범위를 보이며 1.5를 넘는 종이 없었다”면서 “상원사 종은 1.55로 다른 한국 종에 비해 큰 값을 나타냈고, 외관상으로 길게 보였다”고 분석했다. 상원사 종의 외형적 비율을 다른 한국종과 비교한 결과다.

또 상원사 종은 정상 타종시 다른 종들에 비해 진동이 오래 지속됐고, 맥놀이도 뚜렷했다.

김 교수는 “정상 타종시 주변 배경음 환경하에서 약 20여초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진동은 이보다 오래인 30초 이상 지속됐다”고 설명했다. 또 “타격후 약 3초까지 고유진동수 성분이 합성된 타격음을 내다가 사라지고 2차 진동음의 고음이 약간 파르르 떠는 듯하게 들리다 수초 내 사라지고, 가장 낮은 음인 1차 진동음이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하면서 ‘우~웅’하는 맥놀이 음을 잘 만들고 있고, 타격음은 비교적 맑고 맥놀이도 뚜렷하다”고 평가했다.

상원사 종의 1차 진동음의 맥놀이는 ‘오대산 상원사 범종’ 맥놀이에 비해 약간 급박하게 느껴진다.


“맥놀이 급하지만 당좌 위치 특이해 맥놀이 깨끗”

김 교수는 “상원사 종의 1차 진동음 맥놀이 주기는 1.28초로, 자연스레 느껴지는 3~10초 주기보다 짧고, 약간 급박하게 느껴진다”면서 “그 원인은 종의 구조적 비대칭적 요인이 큰 것으로 보이며, 주조의 정밀도 저하와 표면 문양의 비대칭적 분포가 원인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2차 진동음의 맥놀이는 1차 진동음에 비해 더욱 빨랐다. 김 교수는 “2차 진동음은 이보다 훨씬 더 짧은 0.37초의 맥놀이 주기를 보인다”면서 “2차 진동음의 주파수가 290Hz를 넘는 고음임을 감안할 때 너무 빠르다”고 분석했다.

맥놀이가 급하게 빠르지만 당좌가 맥놀이를 거의 만들지 않는 지점에 위치해 정상 타종 하에서 2차 진동음의 고음이 미세하게 파르르 떠는 느낌을 주다가 사라져 1차 진동음의 깨끗한 맥놀이만 들린다고 김 교수는 평가했다.


상원사 종은 어떤 방법으로 주조됐을까?

 

한국범종을 주조하는 방법은 만형법(총형법)과 밀납법으로 제작이 가능하다. 상원사 종은 밀납법으로 주조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도정만 책임연구원(한국과학기술원 전통과학기술사업단)은 ‘용문산 상원사 범종의 금속학적 고찰’ 발표를 통해 “용문산 상원사 종의 상대, 유곽, 연뢰, 비천상, 당좌 등에는 섬세하고 정교한 문양들이 조각돼 있다”면서 “상대, 하대, 연곽, 당좌 등의 테두리에는 만형법으로는 제작이 불가능한 미세한 연자들이 조각된 연주문대가 존재해 밀납법으로만 제작이 가능한 것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상원사종 우리나라에서 밀납법 주조, 신라종과 성분도 유사”

도 연구원은 남천우 교수가 상원사 종이 7세기에 만들어졌을 것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결과를 도출했다. 또 일본에서 주조됐을 것이라는 주장을 반박할 만한 근거도 도출했다.

상원사 범종 주성분이 신라시대 범종의 화학성분과 유사해 주조 시기가 신라시대일 것이라는 주장과, 일본에서 만들어졌을 것이라는 일부 주장을 반박해 한국에서 제작됐을 것이라는 새로운 주장을 제기한 것이다.

도 연구원은 “상원사 종의 천판 내부 중앙부가 누군가에 의해 훼손되어 있었고, 휴대용 형과 x-선 분광기로 천판의 화학조성을 분석한 결과 변조된 화학조성은 원래 종신 재질에 비해 주석의 함량은 감소되고, 납 함량은 매우 높게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또 “납 동위원소비율을 분석한 결과 상원사 종의 제작은 국산재료가 사용되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도정만 연구원 “과학적 분석으로 주조시기 방법 논쟁 해결”

도 연구원은 “일본 사학자들에 의해 한국의 3대 명종 중 하나로 평가된 상원사 종의 미세조직, 화학조성 및 납동위원소 분석, 주조방법 고찰을 통해 상원사 종이 10~11세기 또는 1900년대 초반 일본에서 제작된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제작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도 연구원은 “상원사 종의 과학적 분석을 통해 그동안 논쟁이 되어왔던 상원사 종이 우리나라 재료를 사용해 전통적인 밀납법으로 제작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이상 상원사 종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이 필요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주장했다.

봉선사 부주지 동산 스님은 “상원사 범종의 역사적 차기를 새롭게 조명하는 역사적 순간에 함께하게 돼 영광”이라며 “용문산 상원사 범종이 우리나라 최초의 종임을 밝혀주는 이번 연구결과를 더욱더 심화된 연구로 이어가 달라”고 밝혔다.

학술발표회를 공동주관한 아세아불교문화연구원 이기선 원장은 “오대산 상원사 범종은 잘 알려져 있지만 용문산 상원사 범종은 알려진 내용이 거의 없다.”면서 “용문산 상원사 범종은 103년 만에 제자리로 돌아와 역사적 가치와 출처를 과학적으로 조사해 위상을 찾아가기 위해 학술세미나를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용문사 주지 호산 스님은 “일제 이후 과학적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아 상원사 종의 가치가 제대로 평가되지 않았다. 과학적 분석을 통해 상원사 종의 역사적 가치를 증명하고 그동안의 논쟁을 일소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앞으로 미술사적 연구 등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용문산 상원사 범종의 가치를 증명해 가겠다”고 밝혔다.

 

****************************************************<불교닷컴/ 서현욱 기자   2012.5.16>

 

 

 

황수영 박사의 ‘위종설'은?

 

경기도 양평 용문산 자락에 상원사(上元寺)라는 신라시대 고찰이 있었다. 근대에 와서 절은 폐사가 되고 그 터에는 신라시대에 만든 커다란 범종만 남아 있었다

조선을 강제로 병합한 일본은 1906년 11월에 서울 남산의 북쪽 기슭에 일본식 사찰인 동본원사(東本願寺)를 짓고 고사찰의 냄새를 풍기기 위해 오래된 범종을 가져와 걸기로 했는데 상원사의 범종이 그 대상이 되었다

1908년 그들은 상원사에서 범종을 옮겨오기로 하고 4월에 드디어 대종이 도착했다. 그러나 이 범종은 본래 상원사의 종이 아니라 범종을 옮겨오는 도중 일본인들이 바꿔치기를 하여 진품 상원사종은 일본으로 빼돌리고 20세기 초에 만든 일본식 종을 대신 동본원사에 걸었다는 것이다.

그 뒤 해방이 되고 동본원사가 철거됨에 따라 이 종은 조계사로 옮겨져 조계사종으로 불리게 된다. 바꿔치기된 사실을 알지 못했던 정부는 이 종을 국보 367호로 지정하였다.

 

1962년 문교부 문화재 위원회 제1분과위 회의에서 당시 문화재위원이었던 동국대 황수영박사가 "구 조계사종(상원사종)은 본래의 종이 아니며 일본 무뢰배들이 일본에서 급조하여 만든 종을 가지고와서 바꿔치기한 가짜종'이라고 주장을 하게 된다.  제대로 된 학술조사도 없이 이 주장이 문화재위원회 회의에서 받아들여져 국보에서 해제가 되었으며 이때부터 국민들의 관심 밖으로 사라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번 과학적인 연구로 '위종설'은 잘못 알려진 이야기로 판명날 것으로 보인다

 

 

출처 : 토함산 솔이파리
글쓴이 : 솔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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