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

[스크랩] 그리운 노무현대통령의 일화(펌)

윤여설 2015. 10. 22. 15:10

일화 하나..

 

옛날에 모호텔 일식당에 근무했을 때 국회의원 시절에 오셨었죠..
많은 정,재계인사들이 자주 식사를 하셨는데..
주로 접대를 받으셨죠..
전부 항상 최고급 회나 고급 양주들을 드시니까..
그 날도 주방은 최고급 횟감을 준비했고, 저도 그러려니 하고..
" 무얼 드시겠습니까? " 그러니..
" 아가씨 죽 한 그릇만 주세요.."
" 네??? "    
기업대표가

" 아 왜 그럽니까.. 아가씨 젤 맛나고 비싼 걸로 줘. "
그러자 노무현 대통령이 이렇게 말했었죠....


" 아가씨 나는 얻어 먹는 건 너무 싫고 내 돈 주고 먹을라니까 호텔에서 죽 한 그릇 먹을 돈 밖에 없어.."
그러고 매번 오실 때 마다 죽 한 그릇 드시고 계산도 따로 하셨죠...ㅠ
전 믿어요..그리고 존경합니다~
cyworld.  권보영씨글 (05.23 14:57)

 

 

일화 둘..

 

저는 자이툰부대 출신자입니다. 

향수를 뿌리치고 멀고먼 타지 이라크에서 7개월을 보냈죠. 

해외 다녀오신 분은 아시겠지만  3개월이 지나면 향수병에 걸리게 됩니다. 

전 그랬습니다. 

해외 놀러간게 아니라 내 한 목숨걸고 자랑스런 태극기 어깨에 붙혀 나라에서 보내준 파병이었으니까요. 

근데 4개월 파병생활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정말 힘들었죠. 

부모님 그리고 대한민국이 그리웠죠. 

그때 노무현 대통령님께서 저희 자이툰을 방문해 주셨습니다. 

많은 격려와 찬사를 쏟아주셨죠. 

그러던 와중 어떤 자이툰 장병 한 명이 단상으로 올라가 노무현 대통령님께 

" 아버지! "라고 외치며 꽉 끌어 안았습니다. 

그분은 나라의 대통령입니다.

군인 신분으로 그렇게 함부로 해서는 절대로 안되는 자리였지요.. 

경호원들도 어쩔줄 몰라했었죠..

그때 노무현 대통령님께서는 손짓 한번으로 재빠르게 다가오는 경호원들을 막으시고

그 장병을 꽉 껴안아 주시며 

"그래! 아들아..."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군들이 울기 시작했습니다.

감동으로 울음바다가 되었습니다.

전 그때를 그순간을 잊을수가 없네요.

노무현 대통령님 존경합니다.

 

 

 

일화 셋..

2002년도에 한참 노무현 전 대통령님이 대선주자로 주목 받을 때 였어요

저는 그때 완전 꼬마로 작은 커피숍에서 서빙을 할 때 였어요.

제가 일하는 커피숍에 경호원.수행원. 권양숙여사님 기타 등등

온갖 사람들이 다 몰려왔었어요.

커피숍이 꽉 찼죠.

저는 그 분위기가 너무 싫었어요. 그 고압적인 분위기.

사장님은 굽실굽실하고

이거 내놔라 저거 내놔라.... 감놔라 배놔라 반말 찍찍에...

노무현님은 그냥 가만히 계셨어요.

근데 전 그 분위기가 정말 맘에 안 들었어요. 너무 싫었어요.

그래서 모두들 떠날 때 전 인사도 안하고 노려보고만 있었어요.

노무현님이 마지막으로 나가시는데.. 저를 찬찬히 쳐다보시더니

(저는 고개 똑바로 들고 노려만 보고 있었거든요.)

저를 보더니 90도로 인사를 하시는 거에요.

저는 스무 살밖에 안됐는데. 그냥 어린 하찮은 서버였는데.

노무현 전대통령님만 제 기분을 아셨던 거에요.

제 마음을 읽으신 거에요.

그 후에 사과 꼭 하고 싶었는데... 그때 죄송하다고 만약에 만약에

다음에 만날 일이 있으면 그러고 싶었는데.

이젠 영원히 못하겠네요.

좋은 곳으로 가세요....

정말 죄송했습니다.

 

 

 

일화 넷..

 

아마도 87년 쯤이었을 것입니다.

전 86-88년 까지 군생활을 부산에서 했습니다.

그것도 악명높은 백골단이었죠.

남포동 부영극장으로 기억합니다.

그당시 우리부대는 워낙 인기(?)가 높아 부산시 전역을 카바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더러운 인기였지요 그만큼 진압이 빡시었으니까요.

그날 우리에게 내려진 특명은 지도부 체포였습니다.

예의 진압방식대로 우린 깊숙히 침투했고 최루탄 소리와 동시에 지도부를 잡았습니다.

자욱한 최루탄 연기가 남포동 하늘을 감싸고 비명이 메아리친 다음

우린 습관처럼 전리품들을 차에 실으려 했습니다.

그때 사라진 최루탄 연기사이로 어떤 사람이 보였습니다.

눈물이 범벅이 된채로 그 이는 외쳤습니다.

"이놈들아 내가 노무현이다. 나를 잡아가라! 노동자가, 저 힘없는 저 양반들이 무슨 죄가 있느냐

 나를 잡아가라 ...."

우는게 아니라 울부짖었습니다. 얼굴은 눈물 범벅이 되어 제대로 떠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전 노무현님을 만났습니다.
중대장은 그러대요.

"저 새끼는 잡지마라 독종이니까"

아마도 그 당시는 허삼수니 하는 사람이 중심인 사회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얼마뒤 그 골수분자였던 사람이 정주영씨를 증인으로 세우고

정말 힘없는 노동자의 편이 되어 눈물을 흘리며 정주영씨를 몰아 부치는걸 봤습니다.

 

 

일화 다섯..

 

나는 대전에서 사는 평범한 직장인 입니다...
오늘, 점심을 먹으면서 나는 우연히 노무현님의 초임 법관시절 얘기를 듣고

콧등이 시큰해 오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당시 그분을 가까이서 같이 근무한 법원 직원(지금은 퇴직한)이 전한 말입니다.

노무현님이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젊은 나이에 처음 근무한 곳이 대전 지방법원이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 일생을 살아가면서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이 있습니다.

군대가고 제대하면 예비군 훈련을 받고, 예비군을 마치면 민방위로 편성되어 의무를 다하는 것이지요....
당시 노무현님은 예비군이었답니다.

당시 법원직원의 말씀
" 법관으로써 한번도 예비군 훈련을 빠지지 않은 사람은 노무현 뿐이다...."

당연히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훈련을 받아야죠.

그러나, 당시 빽있고 힘있다는 사람들의 권세를 상상할 때 이는 실로 신선한 충격을 넘어

법원 직원들이 인정한대로 대단한 분이라고 밖에 할말이 없군요.

그리고, 덧붙여서 하는말
"그는 아무리 하위 직원이라도 함부로 대한 적이 없었으며, 권위를 부리지 않는

 너무나 인간적으로 대하여 준 누구나 존경받는 법관이었다."

 

 

일화 여섯..

 

이름:극장에 갔다가
2001/12/8(토) 20:26

요즘 '와이키키 부러더스'라는 영화가 화제다. 죽었다 살아 난 영화라던가.

네티즌 덕분에 이 영화도 살아 났다는 것이다.

오늘 토요일 5시.
여자 친구와 스카라 극장을 찾았다. 아직 상영시간이 안되어 밖에 의자에서 기다리는데 어! 나는 깜짝 놀랐다.
노무현이 극장문을 들어서는 게 아닌가. 딸인듯 한 20대 아가씨와 둘이서 말이다.

두 사람은 웃으며 벽에 붙어있는 좌석번호를 확인한다.

노무현은 내 앞 좌석이다. 잠시 귀를 기우려 들으니 둘은 부녀 사이다.
어쩐지 얼굴이 비슷하더라니.

딸이 음료수를 사다 노무현에게 준다. 영화 상영되는 동안 자꾸만 노무현에게 신경이 간다.

영화가 끝나고 둘이 거리로 나섰다. 나도 여자 친구와 나왔다.

길가던 사람들이 노무현에게 인사를 한다.  어떤 청년은 싸인을 청한다. 나도 싸인이나 받을까.

노무현이 딸과 무엇인가 잠시 의논 하더니 바로 길 건너 낙지집으로 들어 간다.

따라 들어가서 얘기나 해 볼까. 아니지. 모처럼 딸과 즐거운 시간을 갖는데 방해를 해서는 안되지.

여자 친구가 내게 말했다.
" 노무현이 참 멋지지 나도 저런 아빠가 있었으면 좋겠다." 
나도 동의했다.
이름 좀 알려진 정치인이 행차를 하면 참 많은 사람들이 따라 다닌다.
얼마 전 무슨 총재가 극장에 갔는데 언론이 야단법석을 떨더군.
영화를 보러 간건지 선전을 하러 간건지.

오늘 저녁.
노무현은 참 보기 좋더라.  영화도 좋았고..
오늘은 재수 좋은 날이다. 오래 기억해야지.

 

 

일화 일곱..

 

1997년 부산에서 개최됐던 IT전시회(SEK).

수수한 잠바차림의 중년신사가 안철수연구소의 전시부스로 불쑥 들어왔다.

그 중년신사가 '5공 청문회' 스타 노무현이라는 걸 알아보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부산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로 나왔다가 연거푸 고배를 마신 뒤 그가 야인 생활을 할 시기였다.

그는 전시부스에서 안철수연구소가 만든 V3 신제품을 구매했다.

그를 알아본 부스 관계자들이 "그냥 써보시라"는 말에

"그래서야 우리 소프트웨어(SW) 기업이 밥먹고 살 수 있겠습니까"라며 굳이 지갑을 꺼내 돈을 주고 갔다. 

'인터넷 대통령' '디지털 대통령'으로 불렸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보기술산업에 각별한 애정을 쏟은 것으로 IT업계 관계자들은 기억하고 있다.
IT에 대한 노 전 대통령의 관심과 애정은 참여정부의 대표적인 차세대 성장동력 사업인 'u-IT 839' 정책의 밑거름이 됐다. 결과적으로 참여정부 시절 국내 IT산업은 전체 GDP의 17%, 수출의 35%를 차지하며 대한민국이 세계가 부러워하는 'IT강국'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IT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권 교체 후 정보통신부가 해체되고 IT산업에 대한 정부의 냉대가 깊어지고 있는 와중에

  전 대통령의 부재가 이렇게 깊을 줄 몰랐다"며 아쉬워했다.

 

 

일화 여덟..

 

오늘 아침에 차를 보니까 완전히 달마시안 같더군여.. 그래서 자주가는 세차장에 세차하러 갔는데 사장님이 저보구 "대선 누구뽑을꺼냐??" 하시더군여..
바로 당연히 노무현이죠..할려다가 무슨얘기하나 들어볼려구
"저도 잘 모르겠어요.." 라구 했습니다.
그랬더니 사장님이 내가 옛날얘기 하나 해줄께..하시더군여..

그러니까 사장님 나이가 한 35세~ 40세 추정되는데 정확히는 잘모릅니다.

젤 처음하는 말이.."난 노무현한테 죄를 진사람이야.."하데요..
깜짝 놀래서 그게 무슨얘기냐고 물었더니 아저씨왈,

"내가 군생활을 의경으로 했는데 자대가 경남 마산에 기동대로 떨어진거야..

매일같이 닭장차(의경들 타는 버스)를 타고 이곳저곳 시위 막으러 가는데 하루하루 참 힘들고

그때는 시위하고 데모하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젤 나쁜놈들이라고 생각했지.. 왜냐면 내 몸이 힘드니까..

하루는 울산인가..그곳에서 데모한데길래 또 버스를 타고 거길 간거야.. 다들 내려서 대열 정비하고 서있는데

누가 마이크 잡고 큰 소리로 막 소리치는거야..그래서 우리 부대 전체가 그 사람얘기하는 걸 들었지..

그 사람 입속에서 나오는 한마디 한마디가 얼마나 가슴에 다가오던지..
말속에 진실이 묻어나왔어..진짜 그사람 피눈물 흘리는거 같더라구..

우리는 그 사람 얘기 들으면서 한참을 그곳에 침묵하고 있었어.. 대원들끼리 여기저기 수군수군 대드라구..

저사람이 누구냐..저사람 말이 다 맞는거 아니냐.. 저사람 좀 멋있다....뭐 이런저런 얘기들이 오고갔어..

난 그때 쫄병이라 조용히 있었지만 속으로는 저런 사람도 대한민국에 있구나..그런생각을 했지.

그러던중에 시위가 거세지고 한번 붙었는데 우리가 개스를 쐈어.. 그사람 있는 쪽이었지..근데 그사람

그 독한가스 마시면서도 얘기를 계속하는거야..다른 사람은 개스 피해서 뛰는데 그 사람은

그곳에서 개스에 목이 메어도 계속 소리를 지르는거야..
우리는 다 뭐 저런사람이 다 있냐고 그랬지..

그날 밤에 내무반에 왔는데 모두 그사람 얘기하더라구 오늘 그사람이 누구냐?

노조간부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뭐 부산에서 봤다는 사람도 있고..

하여튼 진짜 대단한 사람이라고 다들 얘기하고 개스 쏘고나서 미안해서 혼났다고도 하고

바보같이 피해야지 거서 마이크 잡고 있는 놈이 어딨냐고도 하고 온통 그사람 얘기였어..

그후로도 몇번을 봤는데 그사람은 똑같애..하나도 안틀리고 매번 똑같더라구..

좀 바보같다는 생각도 좀 했지..

제대하고 나서 하루는 집에서 티비를 보는데 많이 본사람이 있는거야..
국회의원이라고 하데.. 하는데 내가 국회의원중에 아는 사람이 어디있겠냐 싶어서 잘못봤나..했는데

유심히 보니까 우리가 깨스쏠 때 서있던
바보라고 생각한 그사람인거야~~난 깜짝놀래서 있는데 이름이 노무현 이라고 나오더라구..

아..노무현이구나..그때 그사람이 노무현이구나..

근데 그사람 티비에 나올때마다 난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드는거야..
우리가 쏜 깨스 그사람이 다 마셨잖냐..그래서 손님들 오면 지금 이 얘기 해주면서

노무현 한표 부탁한다고 선거운동하지..
나한테는 최소한 그사람한테 진 빚 갚는 유일한 방법이잖냐....

 

 

일화 아홉..

 

2002년 12월 대통령 선거 다음날. 당선자 신분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처음으로 발걸음을 한 곳은 자신의 출신부대였다.

육군을지부대. 대통령 당선자 환영식을 위해 우리 사단 군악대도 차출되었는데,

나같은 병사 출신이 대통령이 되었다는 것에 묘한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그렇게 남은 군생활, 국군 통수권자로서 예비역 상병 출신 대통령 노무현을 모시며

군생활을 마치게 되었다. 

 

나 자신이나 후임병들에게 "대통령도 우리처럼 평범한 육군 병사출신이었다" 말하며

자긍심과 격려를 얻고는 하였습니다.

문득 그 시절 제가 국방일보에서 읽었던 기사가 생각나 올려봅니다.

예나 지금이나 노무현 前대통령님은 예비역 병장들의 자랑인 것 같습니다.

 

 

일화 열..

 

부시 대통령이 독도 문제를 한국의 입장에서 신속하게 처리한 배경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시에게 끈질기게 심어놓았던 '역사 개념'이라는 분석도 있다.

독도 이슈는 '영토 문제'가 아니라 '역사 문제'라는 개념이다.

독도와 당시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한일관계가 악화됐던 2006년 9월

백악관 정상회담에서 노 전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에게

독도 문제의 역사적 성격을 회담 시간의 절반 가량을 할애해 '강의'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노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은 여덟 차례 만났고

그 중 세 차례 정도 독도 문제를 설명한 것으로 안다”면서

 “노 대통령은 독도는 한국민에겐 영토 문제가 아니라 역사문제이고, 일본이 제국주의 팽창전략의 전초기지로

독도를 편입해 결국 태평양 전쟁으로 이어졌다는 점을 설명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의제에 없던 이슈를 노 대통령이 집요하게 반복해서 설명해 부시 대통령이 피곤해 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일화 열하나..

 

2007년 당시 저는 대전정부청사 전기 안전 관리자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출근하니 로비부터 해서 정신이 없었습니다.
회의때 들어보니 이틀뒤 대통령 각하께서 대전청사에 방문 일정이 잡혔다더군요.
저희야 뭐 우리가 무는 상관이야 하며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죠.
시간은 흘러 이틀 후 대통령 각하께서 헬기를 타고 오셨습니다.
청사 경호대에서 사람이 와서는 방문이 끝날 때 까지는 출입을 자제해 달라고 하더군요.
띵가띵가 놀고 있다가 검침시간이 되서 사수와 함께 전기실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이없게 노무현 전 대통령님과 마딱뜨렸습니다.

거리는 40미터쯤 사수가 야 얼렁 튀자. 종종 걸음으로 그자리를 피하려는데 뒤에서 누군가 부르더군요.
순간 쫄아서 뒤를 바라보니 대통령께서 손을 흔드시며 저희를 불러 세우더군요.
대통령의 포스란..여직 살면서 사람에게 쫄아본 적은 처음 이었습니다.
그분 특유의 따뜻한 미소로 저에게 묻습니다.

"이곳에서 무슨일을 하십니까.?"
"네?..네 전 이곳에서 전기안전관리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아 그러시군요. 어떻게 일은 할만 하십니까?"
"네..?네..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요즘 경기가 좋지 않아서 ?은분들에게 미안합니다."
"아..아닙니다.."
"하지만 언제나 안좋은일만 있겠습니까.좋은날이 오도록 노력하고 있으니 근로자 입장에서
열심히 일해주세요"(제손을 잡으시며)
"네..알겠습니다.."

그때 일이 저에겐 친구들한테 자랑할 수 있는 추억이 되었고..
오늘 다시금 그분의 살가운 말씀과 미소가 떠오릅니다.
그 분을 욕하시는 분들 저는 삶보다 숭고한 종교도 가족보다 신성한 경전도 알지 못하는 부족한 사람이지만

사람의 진실함과 따뜻한 마음은 느낄 줄은 압니다.
오늘 술약속이 있지만 나가지 않을 생각입니다..

노무현대통령님.. 그때 사회초년생으로 사회생활에 뛰어든 저에게

따뜻한 손내밀어 주시며 좋은 말씀 해주신 거 가슴깊이 묻고 잊지 않겠습니다.
부디 그곳에선 자유롭고 평온하게 잠드시길 기도합니다..
- 당신을 기억하는 한 근로자가.. -

 

 

열 둘..

 

노무현 대통령이 고3 학생들한테 가서

노무현 대통령님이랑 밥 먹을 때 노무현 님이 "학생들 내가 밉지요?" 라고 하셨대요

근데 솔직히 안 밉지는 않아서 우물쭈물 거렸는데

"나도 안 그러려고 했는데 임기가 끝나 갈수록 마음대로 안 돼요.. 미안해요." 이러심..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자주 쓰는 표현 중에 ‘노무현스럽다’는 말이 있다.
‘노무현스러움’은 바로 결벽증의 다른 말이다.

노 전 대통령은 이 결벽증 때문에 종종 일반인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극단적 선택’을 해 왔다.

스스로 설정한 원칙과 가치에 어긋나는 일이 일어났을 땐 참을 수 없어할 뿐 아니라,

자기가 가진 것에 대해서도 별로 연연해하거나 집착하지 않는 스타일이 ‘노무현 방식’이었다.

2003년 10월 10일. 당시 노 대통령이 예고 없이 청와대 춘추관 프레스룸을 찾았다.
“오늘 예정에 없이 이렇게 특별히 자리를 마련한 것은 최도술씨 문제에 대한 제 입장을

국민에게 설명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최도술씨는 20년 가까이 저를 보좌해 왔고… 그의 행위에 대해서 제가 (몰라도)모른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수사가 끝나면 그 결과가 무엇이든 간에 국민의 불신에 대해서 재신임을 묻겠습니다….”

대한민국은 그때도 큰 충격과 혼란에 빠졌다.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게 중론이었다.

재신임이란 말도 생소했지만 “누가 자리에서 내려오라고 한 것도 아닌데

측근이 돈을 받은 문제로 일국의 대통령이 자기 직을 거는 게 타당하냐”는 비판이 많았다.
아예 코너에 몰린 노 전 대통령이 정국을 돌파하기 위해 ‘노림수’를 쓴 것이란 해석까지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과 오래 생활한 측근들의 주장과 해석은 한결 같았다.

당시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은 “측근이 받은 불법적인 돈조차도 괴로워하는 게 노무현 대통령의 결벽증이고,

그게 바로 노무현”이라고 했다.
실제로 그는 대통령직에 대해 재신임을 묻기 전에도 민주당 대선 후보직이나 국회의원직을 내던진 적이 있다.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유인태 전 의원은 과거 이런 일화를 전하기도 했다.

“대선(2002년) 당시 여름을 지나면서 지지율이 추락하자 나를 부르더니

‘정몽준 의원이 어떤 사람이냐’고 물었다. 내가 ‘밖에서 생각하는 것보다는 괜찮은 사람인 것 같다’고 하자

‘후보를 그에게 사퇴할 테니 정 의원 쪽에 다리를 놔 달라’고 했다. 지지율 하락으로 당원들에게 미안한 나머지

후보직을 내놓으려 한 것이다.”
정 의원과 노 전 대통령이 단일화하기 오래전의 일화다.

당시 정 의원 쪽이 거절해 후보 사퇴가 이뤄지진 않았으나 노 전 대통령의 스타일을 짐작게 하는 대목이다.
강한 결벽증에다 자신이 가진 모든 걸 던지는 정치를 해온 노 전 대통령이기에

최근의 국면에선 더욱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측근들은 전한다.

얼마 전까지 봉하마을에서 노 전 대통령을 자주 면담했던 한 인사의 설명이다.
“경위야 어찌 됐건 지난 5개월간 일어난 일들은 60 평생 지향해 왔던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소신이나 걸어온 길과는 배치된 것이었다.

구속이 되건 불구속이 되건 매번 재판에 출두하면서 자신뿐 아니라

가족·지지자들에게 비난이 쏟아지는 걸 노 전 대통령이 견뎌나갈 수 있었겠느냐.”
그는 “대통령에게 살아서 지킬 명예가 더 뭐가 남아 있었겠느냐”며 “잘했다 못했다 할 상황은 아니지만,

가장 ‘노무현스러움’을 보여준 가슴 아픈 장면”이라고 침통해했다.

한 전직 청와대 비서관 출신도 “‘그런 거 가지고 자살하느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노 전 대통령을 잘 모르는 얘기”라며 “노 대통령 자신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재판 진행 과정에서 고통받는 걸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적으론 ‘투사’의 이미지가 강했지만 가까이서 보필한 측근들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해 “성품이 여리고 약한 편”이란 말을 자주 해 왔다.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대선 광고의 컨셉트가 ‘노무현의 눈물’이었듯,

실제로 그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자주 목격되곤 했다.

 

 

정동영 전 의원이 우리당을 없애고 민주당과 합당하려 할 무렵,

청와대에 갔다가 노무현 대통령한테 엄청 험한 소리 들은 일화는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일이다.

대통령은 우리당을 없애는 것에 반대했고, 탈당을 반대하면서 당을 지킬 것을 조언했다.

당시 정동영은 대통령 앞에서 가타 부타 아무 말을 안했다고 한다.

아무 말을 하지 않은게 아니라, 완전히 주눅들어서 아무 소리 못했다는게 그날 분위기에 더 적합한 표현이다.

하여간 그날 대통령은 한때 자신의 경쟁자였고, 또 한때는 자기 정부의 핵심 관료였으며,

곧 대통령 후보가 되려는 사람을 불러 놓고 몹시 허심탐회하게(?) 있는대로 성질을 부렸다고 한다.

왜그랬을까? 아마추어같이?

 

조중동은 노무현에 대해 가끔 고상하지 않은 용어를 쓰고,

속세의 말을 부지불식간에 쓰는 사람으로 이미지를 만들어 퍼뜨렸다. 덕분에 사람들도 그런줄 안다.

하지만 이상하게 조중동은 그가 한 성질하는 사람이라는 것은 국민들에게 말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노무현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고약한 사람인지 모른다. 왜 그랬을까? 아마추어같이?

 

노무현이라고 성질 부릴 줄 몰라서, 권력을 휘두를 줄 몰라서 성질 참고, 권력을 행사하지 않았을까? 천만에~

언젠가 노무현 대통령이 그랬다.

권력은 절제되고 절제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절제되는 것은 견재에 의해서고,

절제하는 것은 권력을 가진 자의 가치관이다.

노무현은 제 권력을 끊임없이 견제 받았고, 헌법이 보장하는 권한조차도 제지 당하기 일쑤였다.

그러는데는 국민들도 한몫했다. 또한 끊임없이 인내하고 참았다.

힘으로, 억지로 해서는 오래가지 못하며, 진짜 동의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조중동은 물론 한겨레에 경향 노회찬 심상정에

한때 자신의 참모였던 정태인의 비난인지 비판인지 모를 공격도 그냥 들어 주었다.

그렇게 들어준 목소리에는 이상희 당시 3군 사령관의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착각한다. 노무현이 바보라서, 멍청해서, 성질 없어서, 할 줄 몰라서, 가진 것도 누릴줄 모르는 븅신이라서,

조중동의 쌍소리와 국민들의 헛소리를 그냥 다 듣고 가만 있는 것으로 말이다.

그렇지 않았다. 참고 들어 준 것이다. 정동영에게 한 걸 봐라. 성질 참 드럽다.

단, 노무현은 정동영에게는 제 성질을 참을 필요가 없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는 지난 4년 동안 정치적 동지였으므로. (노무현의 혼자 착각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이처럼 정치적 동지와 측근에게는 간혹 드러운 성질을 내놓고 보여주었다는 풍문은 들은 적이 있지만,

한번도 그가 나를 포함한 국민들과 자신의 소신을 꺾으려는 국민들-조중동 포함-에게 있는대로 성질을 부리는 걸

본 적이 없다. 권력이 그렇게 제 가진 힘을 참는 동안, 국민들은 스스로에게 자부심을 느낀다.

권력 앞에서도 주눅들지 않고 소신을 말하는 용기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참여정부 3군사령관으로서 소신발언을 서슴치 않으며

초고층 롯데월드 건립을 반대했던 이상희도 그런 국민, 장관 중 한 사람이었다.

이제와 새삼 깨닫는다. 참여정부 때 국민들이, 장관들이, 관료들이, 검찰들이, 경찰들이

그토록 소신있게 대통령에게 맞장 뜰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진짜 소신있어서 아니라,

권력이 권력을 절제하는 것만큼 그들은 소신을, 자유롭게 말하고 행동할 자유를 누린 것이었음을.

참여정부에서 그렇게 많았던 소신 장관 소신 검찰, 소신 경찰, 소신 국책연구기관과

연구자의 기개는 다 어디로 간 것일까?

그들의 소신은 노무현 앞에서만 발휘되는 것이었나?

사람 봐가며 보였다 안보였다 하는 것을 소신이라고 할 수 있나?

아니다. 노무현만이 그들을 소신있게 만들어 주었다! 그들의 소신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지금 권력 가진 자는

노무현이 아니고, 자기 빼놓고 그 누구의 소신도 필요 없는 사람이 권력자라는 것이 다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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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노무현을 사람들이 평가해주지 않는가? 전 굉장히 서운합니다.

특히 학생운동 출신 선배들이 그렇게 하지않는것.

솔직히 말하면 노무현씨가 대학을 안나와서 무시하는 것입니다.

노무현씨가 일정 정도의 대학을 나왔고 일정 정도의 민주화운동,학생운동과 일정정도 연관을 맺고

오늘날까지 왔다면 절대 이런일이 벌어지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너무나 노무현을 가볍게 생각하고 이것은 운동권 출신들의 오만이다.

제가 노무현씨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이유는 나도 서울대 출신이고

나름대로 나도 잘났다는 소리좀 들은사람인데

나 노무현씨한테 머리숙이고 확실히 기고들어가서 일하겠다는 보여주고 싶습니다..

노무현씨는 그럴 만한 자격이 있고 그럴만한 자질이 있는사람이고 그럴만한 능력이 있는사람 입니다.

왜 이걸 인정해주지 않는가? 오늘 이런 사태 노무현씨가 국민경선에 당선되고 나서도

가는데마다 왕따 당하고 모욕당하고 냉대받고

옮고 그름의 잣대로 이걸 보지않는 지식인들 한번 다시 생각해보자. / 유시민

 

한 사람을, 그속에 깃든 영혼의 깊이를..

한순간에 알 수는 없는 일이다..

이제서야 마주하게 된..

한 위대한 영혼의 그림자를..

앞으로 나는 사랑과 존경으로 ?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의 슬픔이 아프지만은 않다..

자랑스럽고, 마음껏 사랑할 수 있는..

그를 알아가는 행복한 길이기 때문이다.. 

 

아침부터 눈물나게 만드네.....

출처 : 문재인 & 자연 문화 동호회
글쓴이 : 푸른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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