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11.22 23:26
한국 첫 서양화가 고희동 가옥 개관전서 공개
"출처 불분명·화풍 달라"… 미술계 반응 회의적
하지만 미술계는 "이 그림의 출처가 불분명한 데다, 춘곡은 1920년대에 유화를 그만두고 한국화로 방향을 바꿨기 때문에 위작일 가능성이 크다"고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고희동이 그린 유화는 작년 근대문화재로 등록된 '부채를 든 자화상'(1915년)과 '정자관을 쓴 자화상'(1915년), '두루마기 입은 자화상'(1918년) 등 단 3점만 남아있다.
-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이 22일 고희동의 유화라며 공개한 시인 이상화 초상. 오른쪽은 이상화 사진.
내셔널트러스트가 공개한 그림은 가로 25㎝, 세로 32.5㎝ 유화로 뒷면에 '1931 Ko, Hei Tong 友 Ree 贈'이라고 썼다. 'Ko, Hei Tong'은 춘곡이 1915년 작 자화상 왼쪽 상단에 쓴 서명과 흡사하다. 고희동 가옥 복원작업을 총괄한 김홍남 내셔널트러스트 상임이사(전 국립중앙박물관장)는 "서양화가 김종학씨로부터 고희동이 그린 이상화 초상을 소장한 수집가를 소개받아 전시하게 됐다"면서 "이상화는 중앙학교(현 중앙고)에 다녔는데 춘곡이 1915년 일본서 귀국한 뒤 중앙, 휘문에서 미술을 가르쳤기 때문에 스승과 제자로 만났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소장자는 30여년 전, 옛 중앙시장(지금의 황학동) 골동품상에서 그림을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술사학자 최열씨는 "춘곡과 이상화가 친분이 있었을 가능성이 낮은데 어떻게 초상화를 그려줬는지 모르겠다. 춘곡은 1920년대 내내 유화를 그리지 않았는데, 1931년에 유화를 그렸다는 것도 미심쩍다. 그림의 진위를 이야기하기 전에 일단 '전(傳) 고희동(고희동의 작품으로 전해진다는 뜻)' 정도로 두고 당시 정황을 먼저 파악하는 게 옳다"고 말했다.
고희동 자화상 2점을 소장한 국립현대미술관 관계자는 "고희동은 윤곽보다 색채를 중시하는 인상주의 작가인데, 이 초상화는 10여년 전 그린 자화상과는 화풍이 다르다"고 했다. 송향선 한국미술품감정협회 감정위원은 "춘곡이나 이상화 가족이 소장하고 있던 거라면 진품 가능성이 크겠지만, 작품을 구입했다는 곳은 가짜가 많이 나돌던 곳이라 섣불리 판단하기 힘들다"고 했다.
미술평론가 윤범모 가천대 교수는 "실물을 봐도 금세 진위를 판단하기는 어렵다. 전문가들의 검증을 먼저 거치고 공개하는 게 좋았을 뻔했다"고 말했다. 한국 근대미술사를 고쳐 써야 할지도 모를 고희동의 새 유화를 검증을 거치지 않고 성급하게 공개했다는 비판이다.
고희동 가옥은 춘곡이 1918년부터 1960년대 초까지 살던 집으로 집주인이 바뀌면서 헐릴 뻔하다가 시민들의 노력으로 2004년 문화재로 등록됐다. 내셔널트러스트는 23일부터 내년 1월 20일까지 고희동 가옥에서 '춘곡과 친구들' 특별전과 춘곡의 작업실 등을 공개한다.
(조선일보에서 옮겨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