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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목(物目) [양맹준]

윤여설 2008. 3. 5. 14:33
 

물목(物目) [양맹준]

 

연말쯤을 글 쓰는 차례로 여기고 시의(時宜)에 맞게 선물 이야기를 하려 했는데 순서가 정해지다보니 뜬금없는 사설이다.
얼마 전에 영양 천씨 석대문중에서 부산박물관에 기증한 5대(代) 6효(孝)의 270여점에 달하는 고문서 가운데서 몇몇의 물목을 접하였다.
이를 보면서 선인들은 선물 하나를 전하더라도 물건만 덜렁 보내는 것이 아니라 뜻을 밝히고 정중한 격식으로 예를 갖춤을 엿볼 수 있었다. 현재 축의니 부의, 쾌유, 장도, 멸청(滅靑-책 발간) 등등에서 봉투 안에 다른 종이로 금 얼마를 따로 써넣는 것도 이 물목의 잔흔임을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물목은 자의(字意)와 같이 물품의 목록이다. 일반적으로 고문서로써의 물목은 혼례 물목을 지칭하는 편이었다. 혼수 물목은 값나는 물품이 아무리 많더라도 그저 현일 훈일(玄壹?壹)로만 쓰이는데 이는 재물의 많고 적음을 나타내기보다 겸양의 뜻으로 검은 비단과 붉은 비단을 하나씩 넣었다는 뜻이다.
여타의 물목단자들은 중요 내용도 아니고 남에게 선물 받은 것을 자랑거리로 여기지도 않았기에 개탁(開坼)후 대다수 폐기되어 남아있는 예가 드물다.
천씨 일족은 조선 후기까지 대체로 무임(武任)이었으나 효자 집안인 까닭에 수령이 특별히 은전을 내린 것이어서 비루하지 않다고 보아 이 문건들이 보존 되었던 것 같다. 천씨 집안의 물목은 세밑에 선사하는 세의(歲儀)물목이 3점이고, 존문(存問) 문안(問安)으로 쓰인 것인 3점인데 양식상으로는 큰 틀은 같으나 부분 부분에서는 각기 다 다르다.
일반적으로 사람에 관한 천망(薦望)단자가 8폭반인데 비해 물목은 모두 6폭반이고 남은 2폭은 피봉(皮封)이 되는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예간(禮簡)형태였다.


 


문서 마지막 행의 연월일 앞에는 인원물제(人原物際)라 하여 사람에 해당될 때에는 ‘원’을 쓰고, 사물에 해당될 때에는 ‘제’를 쓰고 있다. 이는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잘 지켜지고 있었다.
인원물제는 국가문서인 서계(書契)의 별폭(別幅)에도 쓰이는 것으로 보아 오랜 관습으로 보인다. 그 연원에 대하여는 말들이 많은데 글자 자체가 사람과 사물을 뜻한다는 설과 두 글자가 모두 끝을 나타낸다는 설이다.
‘원(原)’은 본래 ‘원(元)’으로 ‘원(元)’이라는 글자가 백성(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것인데 명태조 주원장(朱元璋)을 기휘(忌諱)하여 원(原)이라고 쓰였다는 견해이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원공신(元功臣)을 따른 자를 원종공신(元從功臣)하는데 이를 원종공신(原從功臣)으로 쓰는 예와 같은 경우이다. 그러나 ‘제(際)’의 뜻은 꼭 사물이라는 뜻을 지칭하는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끝을 뜻한다는 설은 ‘제(際)’자는 끝이라는 뜻이 명확한데 비해 ‘원(原)’자는 처음 근본의 뜻이 강하여 두 주장이 다 완벽한 설명에는 부족하다.
세의물목은 설이 다 되어갈 때 청주 두 복자(貳鐥)와 대구 두 마리를 보낸 것이나, 쇠고기(黃肉) 두 근을 보낸 것들로 물품의 양은 그리 호사스럽지 못하다. 삼남도찰사겸토포사의 존문물목에서는 아예 선물의 내용까지 생략되어 예는 갖추되 배려를 잊지 않았다. 또 이때의 선물은 목민관이 덕 있는 사람을 챙기는 것이어서 더욱 돋보인다.
물론 물목이 배달 사고를 막기 위한 부차적 장치 일 수도 있으나 격식을 갖추어 받는 이를 높이는 마음 쓰임이 아름답다. 같은 값이면 이제 우리도 봉투 속에 별지를 넣어 기원이나 염원을 담고 ‘꽃 한다발’이라고 쓸 줄 아는 여유를 배우고 싶다.

▶ 문화재청 부산국제여객부두 문화재감정관실 양맹준감정위원 (문화재청에서 가져왔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