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대학교 국문과4년 과제물 작가를 찾아서 (인터뷰 전문)
때 : 2007년 5월 20일 일요일 13시
곳 : 인사동 Old Tea Shop - VIP Room
*김은옥 학생 인터뷰
안녕하세요, 시인님. 만남을 허락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저희 과제가 두명씩 짝을 지어 시인님을 뵙는 것이라 시인님의 시집 두개를 각각 맡아 궁금증들을 여쭤보겠습니다.
1. 문자 메시지라는 매우 독특한 소재를 시에 옮기셨습니다. 어쩌면 문학과 과학은 서로 대비되는 개념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의 사고 방식을 깨뜨렸다고 할 수 있는데요. 이런 생소하고 이색적인 시를 짓게된 동기라도 있으십니까?
아주 좋은 질문이군요. 원래 문학과 과학은 하나였습니다. 르네상스시대 이후에 분리가 되었지요. 포괄적인 개념으로 글로 기록된 것은 모두가 문학이었습니다. 또한 문학도 근대(영국의 산업혁명) 이후엔 상상력을 요하는 시, 소설, 수필로 나누어졌지요. 그리고 언어로 형상화하지 못할 것은 없습니다. 문학이 자연의 모방이라면 문자는 현실의 반영쯤으로 말한다면 어떨까요? 요즘 문학이 독자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습니다. 시의 경우는 더욱 그렇습니다. 저는 시의 모호함을 떠나서, 우리가 핸드폰 메시지나 E-메일 등에서 널리 쓰고 있는 ^.^ (@.@) !.! (-_-メ) 이런 부호들을 시에 도입해서 우리가 문자보다 더욱 시각적인 효과를 도모했을 뿐입니다. 사실 요즘은 사무실에서 펜의 기능은 컴퓨터 자판이 대신하고 있습니다. 펜보다 자판이 더욱 친숙하고 가깝습니다. 그러므로 현실 즉 IT문화를 작품에 반영했습니다. 휴대폰의 다이얼도 컴퓨터의 자판과 기능이 동일하지요.
2. 시에 대하여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몇몇 작품이 눈에 띄는데요. 각각의 작품에 대한 설명을 좀 들어보겠습니다. 먼저 ‘문자메시지7’을 통해 가족에 대해 엿볼 수 있었는데요. 따님을 불혹의 나이에 얻으셨다고 하셨는데, 정말 무척 행복 하셨겠습니다. 사진을 보니까 따님이 정말 귀엽네요. 시에 따님의 이야기를 쓴 각별한 애정이니 만큼 따님과의 이야기를 좀 듣고 싶습니다. 부인도 미인이시네요. 이렇게 가족을 언제 이루시게 된 건가요? 그리고 부인을 만나시기 전 어린 시절 이야기나 젊은 시절 이야기 좀 들려주시겠습니까?
좀 진부한 말이지만 그래도 가족이 가장 소중하더군요. 해가 지면 돌아갈 수 있는 가정이 있다는 것은 사람이나 동물이나 모두가 매 한가지일 겁니다. 그런데 가족사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려니 좀 어색하군요. 다른 사람들보다 늦게 얻은 아이라서 그런지 아이의 웃는 모습을 보면 지상에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힘이 생기는 것 같아요. 내가 결혼한 것은 아마? 학생들이 태어나던 해쯤이 될 것 같습니다. 정상적으로 아이가 들어서지 않아서 여러 번 의학적 시술을 해서 태어난 아이입니다. 아이가 너무 귀여워서 아이가 어릴 적에 늘 안고 컴퓨터에 앉았습니다. 그랬더니, 손발을 움직이기 시작하는 시기가 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컴퓨터를 다루더군요. 그래서인지 지금 아이는 컴퓨터와 핸드폰을 능숙하게 잘 다룹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라도 게임은 시키지 않고 있지요. 그리고 혹시 불량 사이트에 접속할까봐서 늘 확인하고 있습니다. 가족자랑은 팔불출이란 말이 있지요. 아내는 한28년 정도 계속해서 교회에서 피아노 반주를 하고 있으며 음악학원을 운영한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젊은 시절엔 대전에서 근무한 경험도 있습니다. 그 때 대전의 보문산 공원에 자주 올라갔었지요. 그 공원에 시인이 누군지 잘 생각이 나지 않지만 시비가 서 있습니다. 그 시비를 바라볼 때마다 나도 시를 꼭 써봐야 겠다고 늘 마음속으로 다짐을 했지요. 그 때 다짐이 은연중에 머릿속에 입력이 되어 지금의 시를 쓰는 힘이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3. 시를 통해 보면 지금 현재 인터넷 디지털 시대에 대하여 조금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계신 것으로 생각이 드는데요. 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또 특별히 어떠한 점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말이 있지요. 문화가 발달할수록 인간의 소외는 더욱 심해지는 것 같습니다. 또한 “현대인과 소외”라는 독일의 경제학자 파펜하임이 쓴 유명한 책이 있습니다. 언제 시간이 나면 꼭 읽어보세요. 우리는 디지털시대 이전엔 텔레비전이 사람을 소외시킨다고 했습니다. 또한 가족 간에 대화를 단절시킨 것도 사실입니다. 일과가 끝난 후 집에 돌아온 가장과 가족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대화를 나누던 시간을 텔레비전이 빼앗아 갔지요. 그러나 인터넷의 등장은 엄청난 문명 혹은 문화의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우선 시각과 청각만 빼앗아 가던 텔레비전에 비해서 사람의 모든 능력을 다 빼앗겼습니다. 체력마저도......! 그리고 모든 업무를 인터넷으로 다 해결하므로 사람과의 언어소통 마저 빼앗겼지요. 그리고 사람과의 상대가 아닌 전자제품과의 대하며 일상을 살고 있는 현대인들은 그만큼 차갑고 싸늘한 감이 돕니다. 시실! 인터넷 이전 시절과 이후 시절의 직장 분위기나 사회 분위기가 그렇습니다.
게임중독 이것도 무서운 질환이입니다. 자신의 어떤 의식적 행위가 바로 결과로 나타나는 것은 컴퓨터입니다. 예전엔 유선전화로나 주고받던 상대방과의 음성통화에서 이제는 얼굴표정까지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바라보고 대화를 나누며 게임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의 오감을 모두 모니터에 빼앗깁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쓸쓸하게 게임에 중독되어 가는 것이지요. 채팅도 게임 중독과 동일하지요.
지금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자살문제도 그렇습니다. 어떤 경로를 통해서라도 자살은 IT문화와 직적적인 연관이 있습니다. 아마 가장 큰 부작용이라면 이 점을 꼽고 싶습니다. 컴퓨터를 통해서 만난 사람들의 집단자살은 정말이지 인터넷의 가장 무서운 부작용입니다. 이 인터넷의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학문이 곧 필요할 겁니다. 또한 인터넷 중독 등을 지금 정신과에서 담당하고 있지만 앞으론 의학에도 인터넷 부작용과가 신설될 수도 있을지 모르겠어요.
4. 위의 질문과 연계된 질문을 들어 보겠습니다. ‘인터넷 최강국’ 이라는 시를 대단히 흥미롭게 보았습니다. 전체적인 구조가 독특하고, 한자와 영어, 한글과 이모티콘이 한데 어우러진 대단히 재미있는 시였습니다. 게다가 그 안에서 의미하는 바가 가볍지 않아 저는 좁은 소견이지만 개인적으로 높은 평가를 내리고 싶습니다. 우리나라가 인터넷 강국이 된 것에 대하여 어떠한 생각을 갖고 계신지 알고 싶습니다. 또한 그것이 시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부정적인 생각이라면 우리나라의 어떠한 모습을 소망하시는지도 듣고 싶습니다.
우리나라가 인터넷 강국이 된 것은 매우 자랑스럽고 훌륭한 일입니다. 그리고 잘 한 일입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우리의 경제력입니다. IT만 강국이었지 그를 지탱해 줄 언덕이 없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도 그 심한 몸살을 앓고 있는 노사분규도 국민소득이 2만달러가 넘어가면 사라집니다. 외국의 예로 보면 노사분규의 해결점이 소득 2만달러였습니다.
인터넷의 부작용을 가장 많이 겪는 우리나라도 경제력이 부강하면 지금처럼 폐단이 심각하지 않습니다. 위의 답변에서도 언급했듯이 자살 세계 1위가 말이 됩니까? 정말로 이 사회의 가장 무서운 독이지요. 경제가 부강하면 인터넷 외에도 다른 문화행위가 가능해서 청소년들이 지금처럼 인터넷에 집착을 하지 않습니다. 외국은 우리나라처럼 인터넷 전용선이 없다고 하더군요. 그저 통신모뎀에 연결해서 쓰고 있는 나라가 많다고 합니다. 그들이 우리보다 못살아서 그러지는 않습니다. 우리나라도 인터넷도 잘 발달되었지만, 경제력도 부강하고 문화도 발달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지금처럼 심각한 부작용이 사라집니다. 더욱이 순도 높은 문화를 누리고 있는 나라는 절대로 멸망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 인터넷 중독에 빠져 있는 청소년들을 속히 건전한 문화로 이끌어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어느 곳이든지 연극이 공연된다든지, 또한 음학회가 열린다든지 등등 말입니다.
5. 시인님의 시는 특히나 현대적인 이미지가 많이 풍깁니다. 기존의 사랑이나 자연을 노래하는 진부한 소재를 벗어나서 이색적이고 독특한 소재가 많아서 대단히 흥미로웠습니다. 특별히 이러한 시를 쓰는 데에 영향을 받은 이나, 또는 사건이 있습니까?
가장 무서운 것은 핸드폰이었습니다. 사실 핸드폰은 휴대용 컴퓨터와 기능이 동일하지요. 저도 처음엔 문자메시지도 넣지 못했습니다. 어느 이유로 문자메시지가 들어왔고 답을 요구해왔습니다. 그때는 매우 당혹스러웠지요. 그래서 이래서는 안 되겠나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문자기능을 열심히 익혔습니다. 그리고 저의 시집 문자메시지 서문에서도 밝혔듯이 정보사회의 가장 큰 이슈인 IT문화의 쌍방교통을 첫 체험했을 때는 내가 젊어졌구나하는 느낌마저 들더군요. 그래서 이 문자메시지의 이모티콘을 시에 도입해서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한참 연작을 쓰는데 너무 젊은 층을 의식한 작품이 될 것 같아서 요즘은 문자메시지 연작시는 발표를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시집 한권분량으로 묶을 예정입니다.
6. 시를 쓰는 데 있어서 많이 쓰는 것 못지않게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배웠습니다. 평소에 즐겨 읽으시는 작품이나 주제, 또는 좋아하시는 특별한 시인이나 사상이 있는지 듣고 싶습니다.
좋은 작품을 쓰는 데는 동서를 불문하고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쓰는 방법 외엔 길이 없습니다. 이 창작의 진리는 앞으로도 영원할 것입니다. 평소 즐겨 읽은 작품은 아무래도 우리 문단에 가장 영향을 많이 준 정지용 시인의 작품입니다. 그리고 서정주 시인의 작품도 즐겨 읽습니다. 서정주 시인의 경우 친일의 전적이 있어서 학생층 싫어하더군요. 서정주 시인이 친일을 한 것은 사실입니다. 다시 말하면 나약한 지식인이었지요. 그러나 그의 문학성 또한 뛰어납니다. 시의 국부라고 불렀을 정도로 그의 작품은 우수합니다. 학생들에게 이 두 시인의 작품을 권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는 이형기 시인의 “낙화”입니다. 그 시가 교과서에도 실렸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도 실려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7. 시를 통해 복음이라는 말이 몇 번이나 나왔었는데요. 혹시 특별한 종교를 갖고 계신 것인가요? 아니면 그저 시적인용으로 그 시어를 선택하신 건가요?
저의 종교는 기독교입니다. 그러나 꼭 종교시를 쓰기 위해서 “복음”이란 어휘를 선택한 것은 아닙니다. 그저 시적인용이지요. 그런데 복음(福音Gospel)이란 단어가 매우 좋지 않아요? 복된 음성 말입니다. 그래서 자주 사용했고 특별한 의미는 없습니다.
8. 글을 쓰는 사람들은 그 작품의 기교나 언어적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속에 사회적 의미나 사상적 비판 등의 총체적이고 종합적인 사고를 드러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시인님의 시 속에는 사회에 대한 적절한 비판이나 가벼운 충고가 잘 나타나 있었습니다. 특히나 시를 쓰시면서 중점을 두신 사회적 문제나 이슈가 있으십니까?
문학은 어떤 경우라도 현실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문학은 현실의 반영이지요. 내가 시를 쓰면서 가장 비판하고 싶었던 것은 부조리였습니다. 아마 어떤 작가도 그럴 겁니다. 80년대 이전에는 작가들의 꿈은 아마 민주화였을 겁니다. 그러서 민중시가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지요. 지금의 한국사회는 정치적으로나 언론이나, 매우 민주화가 잘 된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이 사회의 부조리한 구석을 정화시켜야 합니다. 지금 반목하고 갈등하고 대립하는 사회구조를 속히 정상으로 돌려놓아야 합니다. 몰론 이 점이 시인의 몫은 절대로 아닙니다. 그것은 정치가의 몫이겠지요. 그렇다고 모든 작품이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이 부조리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한국사회의 가장 큰 이슈는 현재는 계층 간의 갈등이지요. 좀 쉽게 말하면 빈부의 격차라고 할까요? 그러나 제가 시에 직접 언급은 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한국사회의 가장 큰 갈등은 노인문제가 될 것 같습니다.
9. ‘맹독의 파도’, ‘눈 온 아침에’ 등의 시를 살펴보면 무엇인가에 대한 또는 누군가에 대한 비판과 조롱의 목소리가 느껴지는데요. 특별히 어떠한 대상을 향한 외침인가요? 아니면 막연히 부정적인 대상 전체에 대한 표현인가요?
작품은 작가의 손을 떠나면 독자의 몫입니다. 그 두 작품에서 학생은 무엇을 느꼈나요? 그것이 정답입니다. 그러나 꼭 말을해달라면! 그 작품에서의 대상은 사회 갈등들입니다. 막연한 부정적인 대상 전체이지요. 그러나 작품을 구상할 때를 잠시 얘기하면 “맹목의 파도”에서는 지금은 증시가 호황이지만,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던 “주가지수”를 보고 구상을 했습니다. 주가가 올라가면 소액주주들은 매입을 하지요. 그러다가 주가가 떨어지면 낭패를 봅니다. 부자가 되기 위해 그 주식을 매입하는 소액투자가들을 “맹목의 파도”로 생각했지요. 주식은 오르면 사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소액투자자 즉, 개미군단은 거꾸로 판단을 해서 늘 낭패를 보더군요. 지금의 주가지수도 언젠가는 무너집니다. 그리고 “눈 온 아침”에서는 어떤 축제 ‘아시안 게임’이라든지 ‘월드컵’ 등의 환호성 뒤에 그들의 함성 속에 묻혀 버린 빈부의 고통 사회문제 등을 말한 겁니다.
10. ‘소나기’ 라는 시에서 소나기가 지나간 자리를 ‘저 확실한 치료효과’ 라고 표현한 시구가 매우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이 시에서 ‘진짜 가야할 것’과 ‘엉뚱히 씻겨 나간 것’ 을 대비시키고 있는데요. 구체적으로 이것들이 각각 어떠한 대상을 두고 하신 말씀인지 듣고 싶습니다.
특정한 대상은 없고, 염두에 두었던 것은 위정자들입니다. 참되고 바른 위정자들은 빼고 권모술수와 출세 지향적이며 부정축제를 하던 자들이지요. 더욱이 현재의 한국의 정치인들은 청렴결백한 분들이 매우 적지요. 그리고 정말로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분들도 드물어요. 늘 당파싸움만 일삼으니 말입니다. 지금 국회엔 처리 못한 민생법안이 수두룩하게 쌓여 있습니다. 정말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11. ‘문자 메시지5’ 시를 통해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저는 단지 그것이 문명으로서 대단히 편리하고 신뢰 있는 서비스라는 생각만 했었기 때문에 사람들 사이의 불신의 의미를 내포할 수 있다는 또 다른 사고를 할 수 있었는데요. 이러한 문명의 이기와 사회의 변화에 대한 상관관계를 어떻게 생각하고 연관시키고 계신지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좋은 질문입니다. 매우 편리한 기능이지요. 그러나 카드로 결제를 하면 분명히 영수증을 줍니다. 그런데 문자메시지까지 넣어주니 그 불신이 얼마나 큽니까? 역으로 말하면 우리가 속한 이 사회는 자신이 받은 영수증까지 믿지 못하는 사회가 되었지요. 즉, 자신을 믿지 못할 지경에까지 온 것입니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사회는 복잡해지고 복잡해질수록 불신도 증가할 겁니다. 즉 문명의 진보와 불신은 비례하지요.
12. 문자 등을 통하여 일상생활, 특히나 시인님의 실제 생활이 시 속에 많이 녹아 있어서 훨씬 인간적인 냄새를 많이 느낄 수 있었는데요. 시집 《문자메세지》속에 담긴 문자메세지는 실제로 시인님의 생활을 나타낸 것이 맞습니까? 그렇다면 이러한 시를 쓰실 때에 문자메세지를 받고 그 때 그 때 떠오른 생각이나 명상에 의해 즉각 시를 쓰셨습니까, 아니면 시를 쓰겠다고 생각하시고 떠오른 아이디어로 시를 쓰시게 된 것입니까?
둘 다 맞습니다.
시를 쓰기 위해서 메시지를 받고 메모도 해 놓았고 명상도 했습니다. 그러나 메시지를 받고 즉시, 시를 쓰지는 못합니다. 메시지 수령 후에 영감이 즉시 떠올라서 구상은 할 수가 있습니다.
13. 위의 질문을 좀 더 포괄적으로 다시 한번 짚어 보겠습니다. 그렇다면 시인님의 시 쓰는 습관이랄지 스타일 등에 관해 듣고 싶은데요. 구체적으로 시를 즉흥적으로 쓰시는지 많은 생각을 하고 쓰시는지, 또는 책상에 앉아서 쓰시는지 자연 속에서 편안함을 즐기며 쓰시는지, 또는 기계를 활용하시는지 직접 펜과 종이를 이용하시는지 등의 시 내용 뿐만 아니라 외적인 측면의 시를 쓰는 방식에 대해서 듣고 싶습니다.
저는 시를 꼭 백지에 먼저 볼펜으로 씁니다. 그리고 작품이 완성된 뒤에 컴퓨터에 저장을 하지요. 어떤 시인은 연필로만 쓰는 시인도 있고 또한 원로들은 만연필로만 쓰는 분도 계십니다. 얼마 전 만난 요즘 젊은 시인들은 컴퓨터로만 쓴다고 하더군요. 연필로 쓰는 분들은 퇴고를 즉시 지워가면서 하기가 편리하다더군요. 저는 한번 지은 시를 수정할 때마다 처음부터 다시 씁니다. 그래서 원작과 계속해서 비교를 합니다. 어디가 부족한 부분은 없는지? 혹시 군더더기는 없는지? 등등을 계속해서 확인을 거듭합니다.
14. 간단하고 원론적인 질문하나 짚어보겠습니다. 문자메세지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시 속에 나타난 태도는 휴대폰 메시지 혁명이라고 표현 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긍적적인 의미가 많이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하는데 맞습니까?
그렇습니다. 저는 문자메시지는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부작용을 보완해야 합니다. 요즘 학생들 사이에서 무료메시지 기능을 이용해서 수업시간에도 메시지를 주고받는다더군요. 그리고 휴대폰 중독도 매우 심각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학생들의 휴대폰은 하루에 몇 건 이상은 메시지를 전송할 수 없도록 제한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소아름 학생 인터뷰
1.시를 가장 처음 쓴 시기와 그 동기는 무엇인가요?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지요. 누가나가 어린 시절은 시인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있지 않았나요? 일명 문학소년이나 문학소녀들이지요. 제가 처음 시를 써서 발표한 것은 중3 때로 기억이 됩니다. 그 당시 정확한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학원”이라는 고교진학을 위한 중3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잡지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는 고등학교도 입합시험을 치룰 때였습니다. 그 잡지에 투고를 했더니 운이 좋았는지 실렸더군요.
시는 것과 관련이 되거나 도움이 되시는지요? *취미생활이 무엇인지? (왠지 등산과 같은 것을 좋아하실 것 같은데,,)
등산도 좋아하고 여행을 매우 즐깁니다. 우리나라는 거의 다 가본 것 같습니다. 취미생활이 시창작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지요. 문학작품은 그 사람의 체험과 영감이 결합되어 생산됩니다. 한편의 시를 쓰려면 많은 도시를, 많은 사람들을, 많은 사물들을, 보지 않으면 안 됩니다. 동물, 새의 나르는 모습이라든지, 아침에 꽃이 피어나는 모습, 심지어 별이 호수에 투신하는 소리까지 들어야 합니다. 물론 인스패이션(영감)을 말하는 것이지요. 작가가 오감을 통해 받아드린 지식과 지혜들이 조합이 되어 작품으로 표출되기 때문에 취미가 작품을 쓰기 위한 취재인 샘이지요. 가끔 어떤 시들 중엔 “이름 모를 꽃들”이라는 표현을 쓰는 시인들이 있습니다. 또한 그것이 대단히 감상적인 어휘로 받아드리는 독자도 있습니다. 시인이 이름 모를 꽃을 소재로 시를 쓰려면 그 꽃의 이름을 알아야지요. 스스로 무지함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2.글을 쓰시는 개인적인 스타일, 글을 쓰는 노하우?(어떤 식으로 소재를 선정하여 시를 쓰시나요?)
소재의 선정은 제가 접하는 사물들 중에서 강렬한 인상을 준 것들을 선정하지요. 예를 들어서 유월의 장미꽃을 보며 아! 참 아름답구나. 느끼면서 장미에 대하여 시를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메모를 한 다음 장미꽃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상상을 하며 관련된 이미지를 생각해 선택합니다. 어떤 시인이나 시를 창작하는 과정은 똑 같을 겁니다. 작품의 완성도는 그 시인의 상상력의 깊이에 따라서 성패가 납니다. 시어 선택이라든지 비유 등등이 얼마나 그 소재에 대한 준비를 했는냐에 달려 있습니다.
3.포괄적인 질문-윤여설님이 추구하는 시 세계는 어떤 것인가요?
저의 첫 시집“아름다운 어둠”에서는 다소 문명비판적인 시도 있었으나 철저한 자연주의자였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시집“문자메시지”에서는 첫 시집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디지털”에 대해서 생각해 봤습니다. 지금 이 사회를 지배하는 것은 IT문화가 아닌가요? 작가가 현대문명, 즉 환경을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휴대폰의 문자메시지에 대한 연작시를 썼습니다.
4.시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으신가요?
미국의 시인 알랜 포우도 “진실로 시라고 할만한 것은 서정시를 제쳐놓고는 없다.”라고 말했지요. 시는 서정성에 있습니다. 시를 읽는 독자들에게 아름다움을 주지 않으면 시의 가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광기나 혐오 혹은 그로테스크한 작품들을 쓰는 시인들도 있습니다. 또한 7~80년대 군사정권시절에는 참여문학이라고 하여 독제타도를 외친 작품들도 있습니다. 또한 시인 박노해처럼 노동해방을 외친 민중시인도 있지요. 이제 민주화가 된 요즘은 다시 서정시로 돌아왔습니다. 내 문학의 본질은 정서순화 즉 아름다움에 있지요. 어떤 시대가 도래해도 문학의 두 가지 효용인 교시적 기능과 쾌락적 기능은 변하지 않을 겁니다.
5.시를 쓰실 때 자신도 모르게 자주 사용하는 소재가 있나요?
특별히 정해진 소재는 없습니다. 문학작품을 쓸 때의 소재는 세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서사” 즉 스토리가 있는 것은 소설이 적합하고, 또한 어떤 사건이 전개되는 상황은 희곡이 적합합니다. 시로 형상화하기에 가장 좋은 소재들은 감각적 사물들인 나무라든지, 혹은 의자 연필 산 동물 등등입니다. 그렇다고 어떤 서사나 사건 등이 시로써 쓸 수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형상화하기가 감각적 사물보다 어렵다는 말이지요. 그러나 저의 시집 문자메시지에서 수록된 작품처럼 연작시를 쓸 때는 소재인 이모티콘 한 가지를 여러 가지 시각에서 바라보며 창작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6.주로 자연이나 일상적 사물 그리고 현대 사회의 문명이나, 현 실태에 관한 묘사가 드러나는 시가 많은 데요(핸드폰, 목격자, 권태기, 이상한 성형수술)
특별히 어떤 주제를 먼저 정하고 글을 쓰시나요? (어떠한 주제를 쓰겠다는 노력을 평소에 의식적으로 기울이시나요?) 아니면 자연스럽게 쓰다 보니 일정한 경향이 생겨난 것인가요?
어떤 일도 마찬가지지만 본인이 원하지 않으면 파랑새는 오지 않습니다. 시도 내가 의식적으로 기울이지 않으면 다가오지 않지요. 예를 들어서 시를 김치라고 비유한다면. 처음에 시의 소재는 배추에 해당됩니다. 배추를 씻어서 소금에 저리는 것을 창작행위로 봅니다. 최소한 1편의 시를 쓰기 위해서는 20여번 이상의 퇴고에 퇴고를 거듭하지요. 그리고 김치를 독에서 숙성시키듯이 퇴고를 한 시를 10여일정도 둡니다. 바로 완성을 하면 작품에 몰입이 되어 있어 거리두기가 되지 않아서 어느 부분이 거칠고 미급한 지를 구분이 잘 되지 않습니다. 그 시에 대하여 잊고 10여일 후에 다시 보면 잘 못된 부분이 눈에 들어오지요. 그 때를 김치가 잘 익어서 맛을 볼 때로 생각하면 됩니다. 한편의 시는 이런 과정을 통해서 완성이 되지요.
7.본인의 작품에 대해서 특히 맘에 드는 시가 있다면?(본인의 시 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시가 있다면? 그 이유는?
“아름다운 어둠‘에 수록되어 있는 ”황금관“입니다. 가을산을 황금관으로 비유한 시입니다. 관은 사슴 등, 동물의 뿔을 관으로 나타내기도 하지요. 이렇게 시작되는 시입니다. 단풍든 가을 산을 보면서 ”어느 동물의 뿔이 저리 아름다운가“로 시작됩니다. 그 시에서는 삶에서 ”걱정은 무엇이며 기쁨은 얼마나 갈까 “가 핵심입니다. 거슬리지 않고 성실하게 살면 가을엔 즉, 인생의 황혼기엔 저 가을의 단풍든 산처럼 모두가 위대한 삶이라는 것을 상징으로 나타낸 작품입니다. 좀 까다로운 것 같으나 의외로 쉬운 작품이지요.
8.시를 쓰는 데에 있어 힘든 점이 있으시다면?
내가 전업 작가가 아니므로 시간이 좀 부족한 편이지요. 또한 업무에 바쁘다보면 시나 소설을 쓰고 싶어도 체력이 떨어집니다. 매우 피곤하지요. 그래서 머리에 구상은 많이 했으나 메모만 해 놓고, 실제로 창작에 들어가지 못한 작품들이 많습니다. 나중에 정년퇴직 후엔 지금 바빠서 쓰지 못한 작품들을 모두 완성할 계획입니다.
9.존경하거나 닮고 싶은 시인이 있나요?
아무래도 시를 잘 쓰는 시인을 닮고 싶겠지요. 하하하. 제가 가장 존경하는 분은 저의 스승님입니다. 현재 한국시협 회장님으로 계신 서울대 오세영 교수님입니다. 그분을 가장 존경하지요. 그분의 시 “그릇”을 가장 좋아합니다. 그분이 박목월 선생으로부터 사사를 받으신 분입니다. 그 당시 목월 선생으로부터 사사받은 분들이 지금 시단의 중진인 신달자, 허영자, 유안진 시인 등이지요.
*시집 [아름다운 어둠]과 관련하여....
1.*일상적인 사물
을 예사로 넘기지 않고 그것들이 가진 숨겨진 본능, 즉 속성도 놓치지 않고 섬세하게 다루는 시들이 많아 보이는데요, (예를 들면 대나무, 분수, 인연, 천연의 자명종...) 사물들을 의미 있게 만들어 내는 그러한 통찰과 그로인한 시들의 탄생은 주로 오랜 고심을 통한 것인가요 아니면 즉흥적인 영감에 의한 것인가요?
한편의 시를 쓸 때 무의식으로 표출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즉흥시”를 말하겠지요. 그러나 현대에서 즉흥시는 매우 어렵습니다. 박인환 시인이 즉흥시를 잘 지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인환의 시 “세월이 가면”이 있지요.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겠지만 그 눈동자는 입술은 내 맘에 있어”로 시작되는 시입니다. 50년대 널리 알려진 명동의 “은성다방”이 있었지요. 당시의 그 다방은 문인 화가들의 사랑방 역활을 했습니다. 탤런트 최불암의 모친이 운영했다고 합니다. 술이 얼큰히 취한 인환이 즉흥시로 그 시를 낭송했다고 합니다.
그런 경우는 극히 예외적입니다. 그 시인이 즉흥시를 썼다고 하지만, 마음속엔 늘 시를 준비하고 있었을 겁니다.
이제 본론에 들어가서 한편의 시를 생산하는 데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뼈를 깎는 고통이 따르지요. 물론 소재에 대한 핵심적인 영감은 순간적으로 포착하지만 그 작품을 형상화하기까지는 피와 열정의 소산입니다. 물론 시가 완성됐을 때 느끼는 쾌감 즉, 카타리시스도 크기는 하지요. 그러나 완성 후에 느끼는 카타리시스보다는 창작 과정이 더욱 고통스럽습니다.
2. 시의 경향성을 볼 때 전반적으로 소재가 친숙하여 친근감이 들고 둘러말하지 않으며 난해하지 않아 의미의 전달이 명확한데요. 평소 자신의 생각을 말 할 때 직선적인 편이신지요.
저의 시가 난해하지 않고 의미 전달이 명확하면 일단은 성공했군요. 사실 언어는 구체적이고 명징해야 합니다. 시어는 더욱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서 에서 “여기 꽃이 피었다”는 구체적이지 못합니다. “여기 꽃이면 국화꽃이냐, 장미냐, 민들레인가 등등 아주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한 때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무의미시가 시류를 탄 일이 있습니다. 김춘수 시인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러나 의미가 없는 언어는 언어가 아닙니다. 그저 낱말들의 쓰레기지요. 무의미시는 언어의 유희 즉, 말장난에 불과 합니다. 무의미시를 쓰는 시인들과 대화를 나눠보면 그냥 느낌을 아무 의식 없이 나열한다는 겁니다. 그것을 가지고 평론가들이 인상주의비평으로 이러쿵저러쿵 자신들의 입맛대로 평한 것이 문제이지요. 그래서 저는 구체적인 어휘와 시어를 선택해서 작품을 씁니다 의미 없는 시들을 쓸려면 저도 얼마든지 어렵고 모호하게 쓸 수는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목을 ”아파트“ 라고 하고 ”사막에 고래가 떠다니며 산에 배가 태양을 타고 춤을 춘다. 아빠아빠 나는 행복해요“ 이렇게 썼다고 합시다. 이 작품이 무슨 가치가 있습니까?
4.시 중에서 특이한 구조를 갖는 시들이 보이는데요, 시라는 공간을 통하여 전통적인 시의 형식을 탈피하는 보여주기 방식의 시를 쓰시는 이유는?
문자메시지에서 컴퓨터 자판을 이용한 “유니코드문자표”를 이용해서 이모티콘을 만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앞에서도 밝혔듯이 현재 이 사회에서 가장 위력이 큰 핸드폰의 문자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었으면 전통의 형식 탈피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계열의 시인들이 전통을 많이 파괴하지요. 그러나 저의 작품이 모던하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다만, 저의 시에 현실문화를 반영하기 위한 수단이었지요.
5.(앞서 말한 시들이 오랜 관찰과 관심에 의한 자연스러운 것이라면,) 일반인들도 주변 것들에 관심과 애정을 기울인다면 얼마든지 시를 쓸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혹은 시라는 것은 개발이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특별한 감각이나 재능이 있어야만 쓸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시나요?
이 질문도 많이 받는 질문 중에 한가지입니다. 독자들이 시를 쓰고 싶어 하는 분들이 많은가봐요?
누구나가 시창작에 애정을 기울이면 어느 정도는 작품을 완성할 수는 있습니다. 즉, 보통의 시인은 될 수 있으나 예를 들어 한국의 서정주나 정지용 시인 정도의 시인이 되려면 하늘로부터 타고나야 합니다. 사람의 능력은 어느 정도 개발할 수 있으나 한계가 있습니다. 적절한 비유가 될지 모르나 우리가 마라톤을 하면 어느 정도 실력은 늘 수가 있으나 “황영조 선수”는 될 수가 없지요. 황영조 선수가 달릴 때의 폐활량은 보통 사람들의 걷는 정도에 해당된다고 합니다. 즉 황영조가 뛰는 것은 우리가 걷는 것과 동일하지요. 시도 마찬가지입니다. 노력하면 어느 정도는 쓸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훌륭한 시인은 되지 못할 것 같습니다.
6.사물이외에도 자연을 소재로 한 시들이 많은데요, 개인적으로 사물이나 자연과 같은 주변의 것들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하시나요?
그렇습니다. 관찰력이 예리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 편입니다. 보는 것은 남들과 똑 같으나 포인트가 좀 다르겠지요 하하하.....예를 들면 한쌍의 레일을 “순결을 지키는 부부”로 생각한다든지 등등입니다. 시인은 사물을 통찰하는 눈이 매우 중요한 것 같아요.
7.자연이나 사물을 묘사함에 있어 다소 특이한 점은 성과 관련한 묘사가 많다는 점인데요, 성과 관련한 용어들은 으레 금기하기 쉬울 텐데도 과감히 에로티시즘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망설임은 없으셨나요?
( 특히 굴뚝, 개찰구, 해갈, 갈대꽃, 만개 )
예 저의 경우는 망설임이 없었습니다. 사람이 무엇이냐? 와 왜 사느냐를 생각할 때에 인간은 동물입니다. 동물의 생존 목적은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종족보존에 있습니다.
한 가지만 예를 들면 “우렁”이가 번식을 할 때면 논에 우렁이껍질이 둥둥 떠다닙니다. 우렁의 몸은 새끼들이 자라면서 엄마를 파먹습니다. 즉 자식을 위해서 몸을 희생하는 것이지요.
리비도 혹은 이드라고 표현하는 성욕은 식욕에 앞설 경우도 있습니다. 그만큼 동물들의 종족보존욕구는 강합니다. 그리고 모든 사물은 음양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성은 살고자 하는 욕망이며 살아 있음의 확인입니다. 또한 성은 추한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성스러운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저 평범한 배면문화인 일상의 삶일 뿐이지요. 그러나 요즘 인터넷에 야한 동영상이 공개가 되는 경우가 문제가 되지요. 저는 굴뜩에서나 개찰구 등에서 직접적인 표현은 하나도 쓰지 않았습니다. 저속해지거나 외설스럽지 않으려고 각고의 노력을 했지요. 은유나 상징으로 처리했기 때문에 아무렇지도 않고 자연스럽다고 생각합니다.
7.하이퍼텍스트문학의 시대가 열리고 있는 요즘, 이러한 매체의 발달이 시에 끼치는 영항은 무엇이라고 생가하시나요? 그리고 이러한 변화에 작가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대단히 현학적인 질문이군요. 작가나 시인들이라고 해서 아날로그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습니다. 이제 이 디지털사회는 IT는 문화이자 무서운 권력입니다. 문학도 IT문화에 잘 적응해야 합니다. 쉬운 예로 검색어 창에 서정주를 쳐 넣으면 서정주의 생애와 작품이 창에 뜹니다. 그러면 네티즌들이 클릭해 들어가지요. 그곳이 카페일 수도 있고 개인 홈페이지일 수도 있으며 블로그일 수도 있지요. 문학이 그만큼 독자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가 있어서 참으로 좋습니다. 작가들도 이러한 변화에 잘 대처하기 때문에 홈페이지나 블로그 등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참된 문학은 상상력을 요구하는 작품입니다. 인터넷에 떠도는 작품들은 거의가 감상적인 삼류작품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소위 퍼나르기 현상 때문인데 문학에 대하여 전문성이 없는 일반 독자들은 그런 감상적인 작품이 좋은 작품으로 알고 있습니다. 자칫하면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들에게 영혼에 독을 주입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그래서 최소한 프로 작가들만이도 인기나 시류에 영합하지 말고 어느 정도의 문학성이 있는 작품만을 IT올려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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