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곶이 다리 위에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퇴역한 폐선 보다 더 초라한 모습으로 퇴역해 있다. 가끔 아이들만 발로 툭툭 차며 놀뿐.
괴나리봇짐을 맨 백성들이 가득 지나간다. 양반들이 조랑말 방울을 울리며 도성에 간다. 꽤 경치가 좋다. 남서쪽 반 마장 앞에 처녀 가슴 솟듯한 응봉산이 한강과 어울린 밀애를 보고 그냥 지나치는 객은 없었다. 묵객들은 교판석(轎版石)에 앉아 시 한 수를 읊조리고 있다. 낙방한 과객이 튀어오르는 피라미를 보며 배경 없는 한탄만 하고 있다. 율곡의 가마가 지나간다. 급히 말렸으나 막무가내. 종한테 핀잔만 들었다. 장원급제한 이도령이 마패를 숨기고 급히 건너기에 얘기했더니 역시 알아듣고 성동교로 건너갔다. 한 시간쯤 후 돌아온 율곡의 가마는 광나루가 막혔단다. 건너려던 백성들은 뚝섬역과 한양대역으로 되돌려 보냈다.
석각(石脚) 보다 몇 곱절 장신인 지하철 교각이 비웃듯이 내려다본다. 성동교의 행렬은 아는 척도 않는다. 아파트에 포위당한 응봉산은 겨우 팔각정만 서럽게 얼굴을 내밀고 눈물을 흘린다. 폐수장이 된 구린내 나는 중량천에 가끔 마장동 축산시장에서 떠내려오는 기름덩이를 노린 갈매기만 길손되어 쉬고 간다. 한 때의 과객들이 한양대에서 글 읽는 소리가 위안을 줄뿐이다.
*살곶이다리(사적 160호)
서울 성동구 행당동 한양대 옆 소재
조선시대 석교 중 가장 길며 도성에
중요한 관문이다(76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