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 교수께!
올해 봄은 기온이 높아서 예년보다 계절이 빨라서 오월 초에 벌써 아카시아와 오동꽃이 피었습니다. 이러다가 빨리 지구의 종말이 올까, 우려스럽습니다. 또한 계절의 꽃인 오월도 낮엔 초여름의 기온을 보입니다. 어수선한 세상만큼이나 계절도 어지럽습니다.
L 교수!
지난번 동창회 모임 때 친구가 "너는 수업 시간에 교과서 세워놓고, 그 뒤에 소설책 숨겨놓고 보다가 걸려서 맞은 일이 있지"라고 말할 때 당황하며 "모른다, 아니다"라고 부인했다가 "그런 것 같다"라고 말했지요. 사실! 친구가 그 말을 할 때, 숨기고 싶었던, 잊혔던 상처가 드러나는 것 같아 당혹스러웠습니다.! 갑자기 듣는 지난 아픈 추억이라서 우선 부인했지만 매 맞은 본인이 잘 알지요. 또한 그날 엄청 많이 맞았습니다. 종아리에 피멍이 3주 이상은 간 것같습니다.
그날 읽은 책이 모파상의 <여자에 일생>였습니다. 나의 고교 시절은 교과서는 접어놓고 다른 책만 읽거나 등교해서 낮잠 자다가 다 보냈죠. 그도 그럴 것이 수업엔 흥미가 없었고 집에선 밤새워 독서를 하다가 등교하니 졸리더군요. 또한 나중엔 수업 중에 다른 책을 보다고 몇 번 걸려서, 혼나고 난 뒤부터는 학교에서 독서하기가 매우 두렵기도 했습니다.
. 내가 어느 학교를 다녔어도 고등학교 시절엔 독서만 했을 듯합니다. 그 시절, 내가 안아야 할 정신적 모든 짐들을 책으로만 채웠다고 할까요! 오르지 책 속에서만 삶에 의미를 구하던 시절이었습니다.
L 교수!
요즘은 조선의 중기, 우리의 문학을 주름잡았던 유희경의 <촌은집>과 <이매창평전>과 <허난설헌 평전> 그리고 <허균평전>을 읽고 있습니다. 두 번씩 읽고 있으나 예전 20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속도입니다. 또한 해설이 잘 돼 있지만 원문인 "한시"를 다시 음을 찾아 읽다 보니 매우 늦습니다. 그러나 20대처럼 바쁘지 않고, 다독하지 않으니 읽는 부담은 덜합니다. 또한 내가 이런 책을 뒤늦게나마 접할 수가 있어서 즐거움을 느낍니다.
유희경, 이매창, 허난설헌, 허균은 비슷한 시대인 임진왜란 전후에 문학을 한 분들이라서 그 시대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유희경은 천민이지만 효심이 지극해서 상류층과 교류했고 임진왜란에 의병을 일으켜 참전했습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면천(免賤)됐고 가선대부까지 품계를 받습니다. 그의 주옥같은 작품집인<촌은집>이 근간에 후손들에 의해 국역으로 번역돼서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L 교수!
봄이라서 대지는 생명체들이 활발히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내가 블로그에 파충류 <뱀>에 대해서 올린 글들이 많은 조회수를 올리고 있습니다. 12년 동안 뱀을 연구했는데 이제야 인정받는 것 같아 보람 있고 기쁩니다. 파충류 도감과 에세이 등을 출판해야 되는데, 마음만 있지 잘 실행이 안 됩니다. 학창 시절이나 지금이나 소외된 생명체들을 외면하기가 힘들더군요. 뱀을 연구한 것도 소외된 생명체에 대한 동정이라고나 할까요? 다행히 요즘은 국내의 모든 뱀은 <야생동식물보전법>에의해서 보호종으로 지정돼서 법적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요사이는 주로 스마트폰카를 이용해 사진을 담습니다. 폰카를 사용하는 시민들을 보면서 기술의 대단한 진보를 실감합니다. 또한 1인 1카메라를 실현시킨 이건희와 잡스도 훌륭한 인물이구나 생각합니다.
L 교수!
나의 고등학교 시절, 학교는 어느 낯선 벌판에 홀로선 느낌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누구나가 겪는 갈등일 수도 있었는데 본인만 심각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도 갈등하고 번민했던 고교 시절은, 졸업 전에 현역 지원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지금 그 시절을 뒤돌아보니, 어딘가! 무엇인가? 잘 못 결합된 조립체였던 것 같습니다. 일종에 단절? 스스로의 단절은 절대로 아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개인의 잘못으로 돌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본인은 최선을 다했기 때문입니다. 단, 한 분이라도 내 주위에서 조언을 구할 수 있는 분이 있었다면, 그렇게 차가운 독서에 몰입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즉, 미치지 않기 위에 책에 미치고 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L 교수!
친구 덕분에, 어쩌면 잊고 싶었지만, 잊을 수 없고 속일 수 없는 그 무엇을 다시 본 것 같아서 즐겁지만, 어딘지? 보이기 싫은 깊숙한 상처를 들여다본 것 같습니다.
본인은 33세까지 그 아픔을 해결해 보려고 노렸했습니다.
그때, 내 삶에 절대적 영향을 준 스승을 만나게 됩니다. 그분은 혼 쾌하고 명확한 답을 내려줬습니다. “고민하느라 얼마나 수고가 많으셨습니까? 그런 고민은 이 시대를 사는 젊은이는 얼마든지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들이지요. 세상은 순리대로 되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그것이 삶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자체가 모순이고 역설이기 때문입니다. ” 그렇습니다. 세상의 어떤 종교나 철학도 해결하지 못했던 것을 화두 삼아, 새벽의 끝자락을 부여잡고 몸부림친, 그 모순 자체가 세상인 줄을 그때야 깨쳤다고나 할까요? 그리고 조용히 생각을 거뒀습니다. 즉, 칼을 거뒸습니다.
L 교수!
그 젊은 시절의 번민의 아픔은 내게 상처였는지? 기쁨였는지? 아픔였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 시절! 본인도 생각하는 젊은이! 꿈이 있는 젊은이! 세상을 외면하지 않는 젊은이가 되고 싶었을 뿐입니다.
친구 덕에 묻혔던 고교 시절의 한자락을 들춰보는 계기가 돼서, 나름 상쾌하고 개운한 느낌이 듭니다. 다만, 뒤돌아보기엔 너무 고통스러운 덮고 싶은 유년이라고나 할까요? 본인의 변명으로 들리지 않기를 기대할 뿐입니다.
감사합니다.
도봉산이 보이는 창가에서
윤여설